장흥알리기 민방위교육을 끝내면서....
- 작성일
- 2000.12.08 13:32
- 등록자
- 문OO
- 조회수
- 3147
「장흥알리기 민방위 교육을 끝내면서......」 문 병 길
2000년 하반기 민방위교육을 마치면서 몇 자 올립니다.
문림의 고장
강성서원, 연곡서원, 예양서원, 부춘정, 용호정, 경호정, 사인정등
에 얽힌 의미를 소개해줬고 전남 3대강의 하나인 탐진강 굽이굽
이마다 자리잡은 보림사, 부춘정등 정자문화를 이해시켰다.
호남의 5대 영산중의 하나인 천관산의 장천재에서 조선시대 실학자
인 존재 위백규 선생은 30년 앞서 정약용의 목민심서보다 더 빨리
조선시대 사회질서의 잘못된 점을 「정현신보」에서 주창하였다는
것, 기봉 백광홍의 관서별곡은 정철의 관동별곡보다 25년 앞선
작품이었지만 그동안에 세상 빛을 못 보다가 1961년에야 안양면
기산리 백태인의 집에서 기봉집이 발견되면서 학계로부터 인정을
받았다는 사실도 밝혔다.
그 영향은 오늘날에까지 이어져 국내 중견작가인 이청준, 한승원,
송기숙 등 현대 문학에 등단된 장흥사람만도 20여명에 이른다는 것
을 확인시켜 주었다.
의향장흥
장흥의 역사를 돌이켜 보면 조선시대 때까지 서남해
안일대, 6개군의 정치, 군사, 통신등 모든면에서 중심
적 역할을 수행해 왔다는 말을 꺼내니 거짓말하는
것 아니냐고 이상히들 여겼다.
그런데 역사적 사실이라는 것을 느꼈을 때 자랑스런
선열들의 모습이 아련히 떠올랐을 것이다. 우리고장
의 선열들은 목숨을 받쳐 왜적을 물리친 의인들의
활동상 몇 가지를 소개해줬기 때문이다.
순천대학교 조원래 교수님의 「임진왜란과 장흥의병」
논문중의 일부분인 임진왜란당시 7월 20일 이퇴계
선생의 제자이던 풍암공 문위세는 그의 네아들, 사위
백민수, 조카등을 영암, 강진까지 파견, 의병 200여명
을 모집한 뒤 보성군수를 지냈던 임개영을 전라좌
의병장으로 추대하고, 자신은 군량을 조달하는 총책
을 맡아서 전북금산, 무주, 장수, 경상도 개령(현구미),
성주성 수복전을 대승으로 이끌 수 있었던 것은 적
극성을 띤 장흥의병의 전공이 뒷받침되었다는 것, 특
히 영남지방에 까지 가서 국난극복에 힘썼다는 것을
알려 주었다.
그리고 난중일기 정유년 8월 18일의 한구절, 즉 남해
바다 많은 해전에서 활약한 장흥출신 의병들은 충무공
이순신과 관계가 깊다는 것을 소개해줬다. 그 내용은
무고에 의하여 사형을 받게 되었으나 사형대신 3도
수군 통제사의 관직이 파직당한채 백의종군하게된
충무공은 장흥땅 회진에 이르렀을 때 장흥출신 백남진,
정명설, 문영개, 마성용과 같은 의병들은 이순신
을 도와서 명랑대첩을 준비했다는 사실이다.
장흥표고버섯
물 맑고 공기좋고 환경이 전혀 오염되지 않은 장흥
땅에 자란 참나무에서 생산된 표고버섯을 원료로
하는 표고된장, 표고고추장, 표고간장, 표고국수, 표
고음료를 개발하여 그 성과를 인정받아 장흥군청에
선 1998년도에 행정 자치부로 부터 경영대상을 수상
한 뒤 표고음료는 육·해·공군에 납품하고있으며
일본등 해외까지 수출하고 있다는 사실을 홍보하면
서「표고버섯은 눈을 밝게하고 마음을 편안하게 하
며 신경을 안정시킨다」고 한방의약서 <동의보감>에
적혀있는것, 중국진시황도 버섯을 즐겨 먹었다는 것,
로마 네로황제는 버섯을 따오는 사람에게 그 무게만
큼의 황금을 주어 "버섯황제"라는 별명을 얻었다고
기록된 문헌을 근거로 표고버섯 가공 식품의 우수성
을 인정하게 알려줬다.
민선이후 장흥모습
풀뿌리 민주주의는 지방자치제가 실시되어야 한다고
말하면서 1995년에 부활된 지방자치제는 준비부족과
노하우가 없어 홀로서기를 하는 과정에서 때로는 문
제점이 노출되었지만 우리 장흥지역은 김재종군수의
40여년에 걸친 풍부한 행정경륜과 두터운 인맥을 활
용함과 동시에 온군민과 공직자가 혼연일체되어 최
선을 다한 결과 살기 좋은 지역과 생활여건 좋은곳
부문에서도 도내에서 가장 우수하게 군정을 펼쳐나
가고 있는 것을 자랑스럽게 일러줬다.
그렇지만 우리 장흥지역은 대도시에 비해 개발 측면
에서는 늦은 감이 있으나 자연을 있는 그대로 잘 보
전한 것도 중요한 발전이라는 것, 특히 남도대학 설립,
보림사 복원, 회진항 1종승격 등 대규모 프로젝트 사업을
힘차게 추진하여 상대적 낙후성을 벗어나 이제는
정상궤도에 진입하여 우리장흥은 오랜 침체의 잠에서
깨어나 힘찬 기지개를 펴기 시작했다고 홍보했다.
그리고 장흥은 무한한 발전가능성과 엄청난 잠재력
이 있고 꿈과 희망을 지니고 있기에 조상들로부터
물려받은 문림의향의 값진 유산과 자랑스러운 장흥
역사를 더 새롭게 가꾸고 다시 일으켜 세우는 일이
야말로 우리후손들의 책임이고 몫이다고 말하면서
살기 좋은 지역을 만들고 생활하기 편리한곳으로 탈
바꿈하기 위해 전국에서 가장 많이 일하는 공무원들
이라는 자긍심도 표시했다. 유일한 성인교육인 민방위
교육을 마치면서 참으로 보람이 있었다고 자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