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병길씨에 대한 답--군정은 총체적으로 평가돼야
- 작성일
- 2000.12.11 19:55
- 등록자
- 임OO
- 조회수
- 3095
저의 반문에 대한 답을 그리도 곡진하게 해주시어 감사드립니다.
그러나 문형의 답은 아직도 내게는 충분한 답이 되지 않는 것같아
재 반론을 하고자 합니다.
"「조선일보사와 경제사회 연구원」평가 근거/문병길/「장흥 알리기 민방위교육을 끝내면서」의 글을 읽으시고 /고견을 주신 점에 대해 감사하게 생각하면서 나의 의견을 올립니다. 저는 지방공무원으로 임용된지 22년째 공직생활을 해 오고 있는 신분입니다. 민방위계장으로서 전라남도 계획인 「청소년 민방위학교 운영」에 의거 12.6∼12.11까지 대입 수능시험을 마친 관내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우리 고장의 자랑 거리를 알려 줌으로써 애향심을 고취시키기 위해 빔프로젝트에 의한 방식으로 「문림, 의향 장흥」을 소개하게 됐습니다
" 라고 적으면서 문형이 생각하는 '문림의향'에 대한 나름대로의 고찰을 소개했습니다. 이 내용은 대충 지난 번 글에도 적시된 바, 이 내용에 대해 왈가왈부할 생각은 없습니다. 저 역시 장흥의 지난 역사가 찬란하다는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 이 점에 대한 저의 생각도 문형과 그리 틀리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장흥의 역사를 살펴보면 선사시대, 삼국시대를 이어오면서 강력한 지역 토착세력을 형성하여 통일신라, 고려이후 성장일로를 달려 온 장흥은 조선말까지 정치, 행정, 군사, 통신, 문화 등 모든 면에서 남해안 일대의 중심적 역할을 수행해왔음을 알 수 있으나 조선말 근대 시대 이후 세계사적 조류에 대처하지 못하여 조선의 지배세력이 우왕자왕하는 동안 우리지역 장흥은 그 지정학적 중요성이 충분히 활용되지 못하고, 일제의 침략이후 겨우 법원, 검찰의 치소로서 6개군을 관할하다가 그나마 지금은 장흥, 강진만을 관할하는 사법기구로 전락되어 그 명백만을 유지하고 있을 뿐이고, 그리고 근대화 시대에 이르러 이농화 현상이 어떤 지역보다 빨리 닥쳐 와 오랜 역사를 지닌 토착세력이 도시로 이동하면서 인구가 급격히 감소하였고 경제개발계획에서 소외된 결과 상대적 낙후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농촌소읍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조상들로부터 물려받은 「문림, 의향」의 값진 유산과 자랑스러운 장흥역사를 발췌해서 더 새롭게 가꾸고 다시 일으켜 세우는 일이야말로 우리 후손들 모두의 책무이고 몫이기에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장흥을 사랑하는 애향심을 북돋아 주고 싶었습니다."
백번 옳은 말입니다. 이러한 문형의 생각에 저 역시 적극 동감하고, 이 점에 대해 우리 고향의 청소년에게 강의했다는 것은, 아주 보기드문 일로 아주 좋은 일을 하셨습니다. 고향의 문화와 역사에 대한 해박한 점도 높이 평가할 만하고, 문형과 같은 공무원들이 장흥군에 남아있다는 점에 대해서도 자랑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다만, 지난번 제가 조금은 감정 섞힌 투로 지적했던 부분으로, 민선 이후 현재의 달라진 장흥군의 치적에 관한 것이었고, 이번 글에서도 다시 한 번 평가 근거들을 제시하면서 적고 있는 글에 대해, 이번에도 저는 이 부분에 대해서는 공감되지 않습니다.
문형의 글을 인용해 보자면, 문형은 재차 설명하기를 " 민선이후 달라진 모습에 대해 조선일보사와 경제사회 연구원이 공동 실시한 전국 230개 기초 자치단체를 평가한 결과 「삶의질 향상이 나아진곳」 측면에서 1996년에는 전국 5위, 1997년에는 전국 3위를 차지했고 1998년도에는 버섯음료 경영수익사업에서 대통령상,1999년도에 전국 지방자치단체 경영행정 평가에서 우수상 및 전라남도 관광기념 및 경진대회에서 우수상, 쌀 증산 종합평가 3년 연속우수상을 수상했던 근거자료에 의거 살기 좋은 지역과 생활여건 좋은 곳부문에서 전남도내에서는 가장 우수하게 군정을 펼쳐 나가고 있다는 것을 알려 줬습니다."이라고 하셨습니다.
다시 구체적으로 따져보기로 하지요.
지자체가 실시되기 전 장흥은 경제적으로 아주 낙후되었지요. 장흥뿐만 아니라 강진이며 영암이며 보성 등 호남에서도 도시권역, 즉 광주-목포-여수순천 등 도시 권역에서 소외된 지역은 경제적인 면에서 상대적으로 낙후될 수밖에 없었지요. 아마도 그 중에서 가장 낙후된 곳은 장흥군이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장흥이 지정학적으로 가장 소외된 곳이었으니까요. 그리고 자치체가 실시되었습니다. 중앙정부의 교부금, 지원금은 당연히 낙후된 곳에 집중될 수밖에 없었지요. 그래서 중앙정부로터 교부금을 많이 지원받아 그 동안 낙후되었던 농지정리, 도로- 항만시설 정비 등 사회간접자본 시설에 적극 투자한 것이 우리 군이었습니다. 그러니 그런 면에서 장흥군은 조선일보 등 외부기관들이 지자체를 평가할 당시 강진군 등과 함께 가장 일신한 지자체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하더라도, 역시 평가는 평가이므로, 그 평가를 무시할 수는 없지요. 당연히 민선 1기는 아주 잘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장흥군의 노력 또한 무시할 수 없지요. 민선 2기 들어서도 우리 군은 여전히 지금도 대부분을 사회간접자본 시설확충에 전 투자를 쏟아야 할만큼 아직도 낙후를 면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에서 장흥군이 보여준 "길 닦기"등은 잘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랑할수도 있을 테구요. 또 표고음료를 개발하고, 이를 식음료 상품화로까지 연결하여 수익사업을 일으키려고 한 것까지는 잘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문형, 문제는 민선 2기 상반기를 보낸 시점에서 총체적으로로 드러나고 있는 결과들인 것입니다.
우선, 문형이 그렇게 목쉬게 청소년들에게 자랑했다던 '문림의향'이 관선시대에서는 어떤 비전을 갖지 못한 채 허울만 쓴 상징어가 되었다 할찌라도, 최소한 자치시대에선 주체적으로 그 상징어가 진실로 명실상부 장흥의 상징어가 되도록 노력했어야 하지 않았을까요? 문형이 얘기했다던 그 "문림의향"의 전통은 지금 실체가 어떤가요? 최근 몇년 전부터 전국민에게 회자되기 시작한 그 흔한 '남도문화 1번지'는 물론이려니와 어디 서울에서 장흥군의 그 찬란한 '문림의향'을 찾기 위해 관광하러 온 관고광객이 과연 몇 명이나 되는지요?
그 흔한, 지자체마다 거의 다 갖추고 있는 박물관이나 민속생활전시공간 하나없는 장흥군입니다. 그 흔한 향토 축제하나 있나요. 3대이벤트, 좋지요. 그러나 다들 산에서 하는 산행축제이지요. 잘 아시다시피 보림문화제는 아마 남도권역에서 역사로 친다면 몇번째가 안되겠지만, 그 보림문화제 행사 때 외지인들이 구경이라도 오나요. 장흥의 그 찬란하다던 전통문화를 구경하러 외지인들이 옵니까? 장흥의 역동적인 전통문화로 장흥고줄놀이가 뽑힐만 하지만, 지금 장흥에는 그 고줄 전시관이라도 있습니까. 언제인가, 장흥신문에서 문형종친들로부터 얼마난 많은 지원금을 받았는지 모르지만, 풍암 문위세공에 대해 지나칠만큼 장황히, 소개한 것을 보았는데, 과연 장흥이, 문형 말대로 의향이라하면, 그런 의향임을 증명해 보일 무슨 역사유적공원 하나라도 만들었어야 하는데, 그런 역사공원이 어디 있기라도 합니까? 방촌 문화마을요? 그런 정도의 문화마을은 전국에 지천으로 널려있습니다. 동학을 얘기하는데, 동학에 대한 무슨 기념관이라도 있습니까? 동학제가 전군민적인 행사로 치러졌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언제인가 동학세미나가 장흥신문사 주최로인가 개최되면서도 말이 많던데, 물론 영회당과 동학후예들간의 보이지 않는 마찰을 모르는 바가 아니지만, 그래도 군 당국에서 민선이므로, 그런 것을 얼마든지 관광상품화할 수 있을텐데, 과연 그런 시도라도 해 보았나요? 언제인가 친구들과 함께 문형도 자랑했던 보림사를 찾은 적이 있었는데, 보림사를 소개하는 책자 하나 없어 실망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고향의 친구들한테,고향의 소식을 자주 접합니다. 최근은 우울하기 짝이 없는 소식들만 난무합니다. 좀 심한 말을 좀 할까요? 지금 김옥두 사무총장님이 자리가 위태롭긴 해도, 서울의 우리 친구들한테서는 "집권당사무총장을 두분이나 낸 우리 장흥인데==="라거나 "O군수는 길OO"라거나 하는 말이 심심잖게 나옵니다.
방향이 보이지 않나요? 아직도 우리 군은 누가 몇천억원 희사해야, 몇천억원 자금 투자를 해야 합니까? 군에서, 군민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있지 않습니까?
민선은 지방정부를 의미합니다. 지방자립도가 형편없이 취약해, 중앙의 자금지원에 의하지 않고서는 무슨 일 한 가지도 할 수 없다는 실정을 모르는 바는 아닙니다. 그러나 지금, 장흥은 일대 도약할수 있는 호기로 알고 있습니다. 개발촉진지구로 지정받았고, 전남도로부터 중남부개발계획에 의한 투자, 그리고 탐진댐건설로 인한 지원(대안)사업들이 추진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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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선의 행정은 잘했을 것으로 압니다. 평가가 그렇게 나왔다고 하니까요. 그러나 정작 민선의 진정한 평가는 역사가 말해줄 것입니다. 지금, 장흥군의 민심은 과연 어떠한가요. 장흥군의 비전이 보이지 않는다는 게 많은 이들이 지적하고 있더군요. 2,3년, 4,5년 잘했을 수 있겠지요. 외부기관에서 그렇게 평가가 나왔으니까요. 그러나 진정한 평가는 군민이 하는 것 아닌가요. 군민이 외면하는 그런 수치들을 기준으로 군정을 일방적으로 호도할 수는없는 것 아닌가요.
여기 문형으로부터 교육받았다고 하는 학생들의 소감 몇 마디를 그대로 인용해 보면서 일차 문형에 대한 글을 맺습니다.
"제목 : 소감문 /번호 : 656 /작성자 : 장흥실고2-3최준호/
--- 이순신 장군께서 머무른 회령진성 성벽이 2KM가 되었는데 지금은 100M쯤만 남았다고 하셨다.
그 이유가 간척사업에 사용해 버렸다고 하였다.
그런좋은 문화유산을 없에버리다니... 정말 마음이 않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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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우리고장 장흥/번호 : 655/작성자 : 장흥실고2-3윤미라 ---우리 고장을 다시한번 생각해 볼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었던 것 같다.제암산과 사자산. 억불산등 슬픈 전설이 깃든 이름있는 산 아래...또 탐진강의 맑은 물줄기가 흐르는 그 곳에...그리고 보림사와 같이 문화적으로 유서깊은 장흥이라는 곳에 내가 있다는게어쩌면 큰 행운일지도 모른다고 말이다.하지만 이와는 달리 아쉬운 점도 있었다.의향의 고장으로 의병활동이 활발하게 일어났었고 크고 작은 역사속의 한 매개였던 자랑스런 장흥이라는 이름이 고경명이라는 타지역 사람으로 왜곡되어 잘못 알려지고 사실을 알리기는 커녕 이 사실조차 몰랐던 우리들의 모습이 부끄러웠다. 또 지금은 100여 미터밖에 남지 않았다는 회령진성 성벽이 관리도 제대로 받지 못한채 허술하게 방치되어 이제는 그것조차 다른 용도로 쓰여져서 그 옛날 성벽으로 제 몫을 다 했던 그 모습을 찾아보기 힘든 지금의 사진을 보고 장흥에 대해 설명해 주셨던 문병길 강사님의 아쉬움이 담긴 목소리가 이해가 갔다."
시간이 별로 없어 오늘은 여기서 이만 접습니다. 다음에 제대로
또 얘기해 보기로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