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그동안 뭘했습니까
- 작성일
- 2000.12.13 09:49
- 등록자
- 박OO
- 조회수
- 2894
임마위님께서 말씀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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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힌돌님께서 말씀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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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마위 선생
그럴듯한 반박이군요 그러나 나처럼 박힌돌들을 슬프게 하지마세요
그 누가 자신이 살고있는 고장을 못살고, 보잘것없고, 형편없는 곳이라고 말하겠습니까.더욱이 우리고장의 장래를 짊어진 학생들에게
회진 성벽이 허물어지고 관리하지 못했던 그시절 고향을 지키던 토박이는 보릿고개를 넘어야 했고, 남의집 잔치집에서 품을 팔아야했던 그런 시절이었습니다. 마치 요즘 아이들이 6.25동란을 말하며 그때 시레기 죽도 감사했다고말하니 어린녀석이 하는 얘기가 밥을 목먹으면 라면이나 빵을 사자시지 그랬어요. 하고 말하는 것과 같은 논리로 말씀하시면 어려운 시절을 살면서 오늘이 있기까지 고향을 지키며 살아온 분들에게 큰 욕이 아닐 수 없습니다. 임마위씨 당신에게 이런말씀을 드리면 기분 나쁘게 생각할 련지 모르지만 혹 당신도 배고파하며 고향을 뒷전에 두고 객지로 나서진 않았나요? 너무 나무라하지 마세요.고향을 지킨자들의 슬픔을 이제와 들먹여 어쩌자는거요
힘들게 살아온 어른들의 삶의 흔적은 역사위에 남는 것입니다.
좀 더 내일을 위해 건전한 방향을 제시함으로서 앞날을 이끌어 갈 젊은이들이 희망을 않고 또한 자신의 고장에대한 자긍심을 안고 살아가지 않을까요. 그래도 박힌돌과 토박이들은 오늘도 고향의 발전을 위해 머리를 맞대고 열심히 살고 있답니다. 너무 비판적이고 현실의 결과를 놓고 말하지 마세요. 정말 슬픈 과거를 아니 아픈 상처를 헤집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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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힌돌씨,
본말을 전도하는군요.
제가 글 끝마디에 인용했던, 학생들의 글을 인용한 것이, 마치 제가 그것을 결론으로 말하고자 한 것으로 착각, 저의 주장 전체를 그쪽으로 몰아부치니, 할말을 잊게하는군요. 요즘 논술고사를 준비하는 고등학생들에게 읽히게 한다면 박힌돌 같은 학생이 과연 몇명이나 될까요? 사실은, 그게 아니겠지요. 부러 한 통속인지라 문형을 돕고자한 마음의 일단으로 읽혀야겠지요.
보릿고개 시절, 회진성벽의 허물어짐을 방관할수밖에 없던 것을 우리들의 잘못으로 매도하지는 않았지요. 그때는 그렇더라도, 다들 살만한 지경이 되는 지금에 와서 다들 경쟁적으로 매달리는, 그런 것에 왜 우리는 관심도 전혀 없느냐는 것이었지요.
한 예를 들어보자구요.
최근의 보도에 의하면, 화순-고창-화성의 고인돌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이 확정된 것 같더군요. 고인돌에 대해 다들 그렇게들 관심갖기 시작했을 때 우리들은 어찌했나요. 불과 수년 전이었는데 말입니다. 1년전인가, 공보과에 고인돌을 담당하는 사람에게, 장흥군의 고인돌 분포현황을 물었을 때, 전국에서 분포기수가 가장많다면서 자랑스럽게 2,251기에 달하며, 파괴된 수는 지표할 당시의 89기에서 더이상 파괴된 기수는 고작 십몇기에 불과하다고 말하더군요. 지표조사는 목포대 박물관에서 실시했고, 그때가 87,8년이었다고 하더군요. 그러나 필자가 알기로, 농지정리 과정 등에서 상당한 양의 고인돌이 파괴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농지정리하면서 나온 고인돌이 지금은 다 어디에 있지요? 고인돌 소공원이라도 만들었나요?(이점에 대해 유수 월간지의 한 친구한테나 일간지 특집부 기자에게 직접 현지 취재조사를 의뢰해 볼 생각도 듭니다).그 농지정리작업들이 바로 보릿고개 시절에 이루어졌나요? 아니지요. 그리고 우리 군은 과연 고인돌의 세계문화유산 등록 등과 관련한 작업에 얼마나 관심을 가졌나요? 전남도에 지난 해 언제인가 친구에게 물어본 적이 있었지요. 화순같은 경우, 고인돌 채석장 같은 것이나 밀집도 등에서 경쟁력을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었음에도 엄청난 행정 로비를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군은 관심조차 없었다고 하던데, 사실이 아니리라 믿고 싶지만, 어쨌든 우리 군의 경우 관심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 것은 사실이 아닌가요.
박힌돌씨. 우리 어른들의 슬프고 아픈 과거, 굳이 들추자고 한 것도 결코 아니지요. 그렇지만, 박힌돌씨 생각처럼 경우가 그렇게 되었다고 해도, 곪은 상처가 있다면 그것을 언제까지 덮어둬야 합니까? 역사는 그리 간단하지가 않지요. 언제인가 더 무섭게 과장되고 확대되어 더욱 심하게 파헤쳐지는 게 역사의 교훈이 아니던가요. 우리나라의 근대사가 왜 이렇게 비틀거립니까? 일제강점기 이후, 시비를 제대로 가리지못하고 덮기에만 급급했기 때문이 아니던가요?
그러나 거듭밝히거니와 저는 그런저런 과거를 들추자는 것이 결코 아니었지요. 다만, 이제라도, 더 늦기 전에 우리 군도 무엇인가 경쟁력있는 지역의 이미지를 만들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많이 있었던 차에, 문형이 아직은 비전은 손톱만큼도 보이지 않는 '문림의향' 운운하고 민선 군정을 그리도 성찬하기에 문형에 대한 반론을 제기했던 것이고, 그러다 보니 이전 글로 연계된 것뿐이지요. 전후사정을 압시다. 그리고 제가 말하고자 하는 의도가 무엇인가를 파악해 보려고 애써 주시길 바랍니다.
그나저나,박힌돌씨,우리 서로 자제합시다.
막말로 해보자고 덤빈다면, 얼마든지 사실에 근거한 수치로 덤벼들 수 있습니다. 지난 98년엔가 표고유통공사에 대한 경영을 잘했다고(?) 수상한 것에서부터, 사실상의 표고유통공사의 실체까지도, 그동안 민선 이후 장흥군에서 받은 교부금이 얼마이며, 그 교부금을 다 어디에 썼고, 문화에 대한 투자가 얼마이고---. 그런 것들을 타 지자체와 비교해보며 본격적으로 논의해 볼까요?.
저 역시 장흥이 고향입니다. 고향에 관심이 없고, 고향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으면 이 게시판 찾지도, 시간내어가며, 내 생각을 그렇게 장황하게 적지도 않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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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고 싶습니다. 그동안 임마위씨는 뭘했습니까?
함께살아오지 않았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