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영우님에게 보내는 조문(3)
- 작성일
- 2000.12.31 09:17
- 등록자
- 임OO
- 조회수
- 2915
논쟁을 제기했으므로 시작은 해야겠지요. 우선 큰바위님의 글에 대한 논지의 허술함을 하나하나 지적하며 또다른 자신의 문제 제기를 시도한 박영우님부터 상대해 보기로 하지요.
마치 한 패거리는 아니라는 점을 부러 강조하기라도 하듯 큰바위님의 논지에 대해 자신있게 반박하고 있는 모습은 마치 담박에 그 누군가를 연상하듯, 인상적이었다는 점만은 먼저 말씀드립니다
또한 그럼으로써 자기는 아주 단단한 논리로, 해박한 진리로 무장되었음을 과시하기라도 한 듯한 위세, 그 위풍당당한 모습이 눈에 선하군요.
"장흥신문은 모두에게 칭찬을 받을 수는 없지만 이런, 저런 말이 너무 많이 나온다는 것은 여러각도로 검토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반성을 해야한다. 많은 사람의 얘기가 나오게 된 까닭이야 어디에 있던지간에 (그것이 오해이고 몽매한 독자들의 편견이건, 음해하려는 목적을 가진 집단이건) 그러한 원인을 제공한 주인공이므로..."
이것이 박영우님이 본문에서 도입하고 있는 장흥신문에 대한 자기 변입니다.
장흥신문은 모두에게 칭찬받을 수는 없다.
그러나 이런저런 말이 너무 많이 나오는 것은 여러 각도로 검토해야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반성해야 한다.
이상이 박영우님이 펼친 첫 문장 논지의 요지입니다. 이를 한 문장으로 '장흥신문이 모두에게 칭찬받을 수 없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어떠한 원인에서건 많은 사람으로부터 비난(또는 비판, 칭찬의 반대어이므로-필자 주)받는 데 대해서는 여러 각도로 검토해 보거나 반성해 봐야 한다'는 말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결국, 박영우님이 하고자 한 말의 의도는, '장흥신문에 대한 비판적인 얘기가 많이 나오고 있므로 반성을 해라,는 내용이 아닌가 싶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박영우님의 신문에 관한 한 철저한 무지를 여실히 볼 수 있습니다. 신문에 대한 이러한 정도의 식견, 아주 한 마디로 무지라고밖에 표현할 없는 그러한 소견으로 어떻게 장흥신문에 대한 문제를 지적하고자 나섰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군요. 더구나 논리의 전개 역시 그처럼 허약할 수가 없구요.
첫째, 신문이라고 하는 특수한 기능과 역할을 이해하신다면, 먼저 전제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즉 비난의 말, 비판적인 의견 등등이 과연 어떠한 사람으로부터 많이 나온다는 전제가 있어야 합니다. 구체적인 그 실체를 밝혔다면 금상첨화요 최선이었을 터이고, 차선으로나마 대충 어떠어떠한 사람들(어떤 부류의 사람들)이라는 정도의 전제가 필요했다는 겁니다.
이러한 전제 위에서만이 비로소 반성 운운할 수도 있었을 것이고, 여러가지 각도로 검토해 봐야 한다는 충언도 다소 설득적일 수 있었을 것입니다.
만일, 고위 공직자들이나 지도층 인사, 지역 유지급 인사들로부터였다면, 장흥신문은 반성할 필요없습니다. 그때의 장흥신문은 신문 본령의 기능을 잘 수행하고 있다고 할 수 있으니까요. 그러나 많은 지역 주민들이나 서민들로부터 그러한 비난이나 비판적인 얘기들이 많이 나온다면 그것은 당연히 반성해 봐야 할 심각한 문제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설혹 앞에서 필요로 했던 전제 조건, 즉 신문을 비난, 비판하는 계층의 사람들이 예시되었다고 해도, 바로 그 사람들의 비난이 많으므로 그 신문은 반성해야 한다고 하는 일방적인 주장도 전적으로 맞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신문의 경우, 칭찬과 비난은 항상 양날의 칼날 같은 것이니까요.
본시 신문이라는 것이 하도 요상한 존재로 괴상망측한 성격이어서 과거도 그랬지만 현재의 사회구조에서는 모두에게 칭찬받을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한쪽에서 칭찬하면, 한쪽에서는 비난하고, 한쪽에서 비난하면 다른 한쪽에서는 칭찬받는 존재이거든요. 소위 보수 기득권 세력으로부터 칭찬받으면, 일반 대중으로부터 비난받기 마련이고, 일반대중으로부터 칭찬받으면 보수기득권 세력으로부터 불평과 비난의 대상이 됩니다.
간단히 한 예만 듭시다.
5,6공때 신문들이 권부와 철저히 결탁했을 때, 그 신문들은 기득권 세력에서는 칭찬받는 신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일반 국민 다수로부터는 철처히 외면받고 비난받았습니다. 그때의 신문들은 국민들로부터 반성도 모자라 개혁, 변혁되어야 한다는 주문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권부는 그런 신문들이 마냥 좋았던 것이 아니었던가요.
본시 신문이란 게 이러할진대, 장흥신문도 엄연히 6만군민이 한 지자체라는 사회구조를 이루고 있는 장흥사회에서 존재하는 지역의 한 신문일진대, 어찌 그러한 신문의 본태적인 성격에서 자유로울 수 있겠습니까.
박영우님, 더 구구히 설명 해주어야 합니까? 아마 몇시간 강의라도 해 주면 모를까, 여기서의 아무리 장황한 설명이라도 그것 가지고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겠지요.
신문이라고 하는 것, 요놈이 도대체 뭣을 하는 놈인지, 어디에 쓰이는 물건인지도 모른 채 무작정 신문을 비판하려고 나선 겁니까. 혹여 누군가의 사주를 받은 것은 아닌가요.
이러한 박영우님과 더 이상 무슨 논쟁을 할 수 있습니까? 이런 박영우님을 상대로 하자니 제 자신이 그렇게 초라해보일 수가 없군요. 더구나 그대의 불순한 의도의 전모가 한 눈에 다 보이고요.
조문 한 장 보낼테니, 숨소리나 죽이고 있으시오.
조금 있다가 또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