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이력서
- 작성일
- 2001.01.08 18:52
- 등록자
- 리OO
- 조회수
- 3306
그녀의 이력서엔 아무것도 쓸 것이 없습니다. 육십여년 살아 오면서 학교라고는 근처에도 가보지 않았고, 이름있는 회사에 취직한 적도 없습니다. 일곱살 때부터 밥짓기와 빨래를 하였고, 조금 자라서는 모심기와 길쌈을 하였습니다. 열 아홉에 결혼하여 그녀가 얻은 것은 쉴 틈 없는 농사일과 자식 기르기였습니다. 해가 바뀌면서 그녀의 이력은 몇 가지 더 추가 되었습니다만, 이력서라는 양식에 들어갈 만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파출부와 식당 종업원. 그리고 지금은 건물의 청소부로 일하고 있습니다.
나는 손금을 봐 준다고 그녀의 손을 잡고 앉았습니다. 손금은 보지 못하고, 이리저리 헝클어진 세월을 보았습니다. 각구목 같은 팔뚝에 남아있는 상흔들은 마치 못자국 같았습니다. 손금은 도무지 보이지 않고, 잘린 엄지 손가락과 굳은 살만 보였습니다. 지문 없는 그녀의 손끝은 반질반질 잘 닦여 있었습니다. 손바닥 가득 퍼진 기름 때, 잔뿌리 무성히 뿌리 내리고 있었습니다. 먹물처럼 번진 검은 때는 손바닥 가득 채우고도 남을 이력서의 내용이었습니다.
그런 그녀가 우리의 어머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