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이를 지는 아이로 키우고 싶지 않다
- 작성일
- 2001.05.23 23:48
- 등록자
- 가OO
- 조회수
- 2352
'지는 아이로 키우기 운동'에 대한 소식을 접하고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일단은 '지는 아이로 키우기'라는 말이 지닌 의미를 쉽게 이해할 수 없었고, 이기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을 것 같은 현실에서 '지는 아이'라니! 그리고 아이가 그렇게 자라주었으면 하는 바람도 아니고, '키우기'라니! 말이 턱턱 걸렸습니다.
그러면서 나는,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평소에는 별로 생각하지 않았던 상념에 사로 잡혔습니다. 내게도 아이가 있습니다. 나는 한 번도 녀석이 이기는 아이가 되어야 한다거나 지는 아이가 되어야 한다거나 하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습니다. 다만 제 나름대로 사회성을 획득하기를 바라고 있었을 뿐입니다. 그런데 '지는 아이로 키우기 운동' 소식을 접하고나서, '지고 이김'에 대해서 나는, 내 아이가 어떻게 자라길 바라고 있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지는 아이'라는 말은 '질 줄 아는 아이'라는 말과는 전혀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말 듯을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지는 아이라는 것은 질 줄 아는 아이가 아니라, 이기지 않는 아이로 해석됩니다. 만약 지는 아이라는 말이 이기지 않는 아이라는 뜻으로 쓰였다면, 나는 내 아이를 지는 아이로 키우고 싶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제 아이가 이기기만을 바라지는 않습니다. 많은 부모들은 아이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맞고 오지 말아라.'
그러면서 그 부모들은, 자식 맞고 오는 것은 보지 못하겠다, 합니다. 병원비를 물어주더라도, 자식이 맞고 오는 것보다는 패고 오는 것이 기분이 좋다고도 합니다. 거기에는 내 자식이 피해자보다는 가해자가 되기를 바라는 기형적인 심리가 깔려 있습니다.
그것은 기성 세대들이 지고만 살아왔기 때문에 나온 현상이 아닐까요. 지금의 기성세대가 살아온 현실은, 살아남기 위해서 매일 질 수밖에 없는 세월이었습니다. 힘있는 자들 앞에서 지지 않으면 살 수 없었던, 아아 대한민국에서의 삶. 불의에 맞서면 어김없이 죽음에 가까워질 수밖에 없었던 질곡의 현대사. 행여 기성 세대가 겪은 이런 경험들이, 자신의 아이들에게 이기는 삶을 강요하지는 않았을까요?
그러나 한국의 많은 부모들이 '이기는 아이'를 구호처럼 외치고 있는 마당에, 한국수양부모협회가 벌인, '지는 아이로 키우기 운동'은 신선한 충격으로 보입니다. 남의 아이보다 내 아이가 싸움을 잘 할 수 있게 태권도 학원에 보내고, 남의 아이보다 내 아이가 공부 잘 할 수 있게 속셈학원에 보내고, 피아노도 잘 쳐야 하므로 피아노 학원에 보내고, 영어 학원에 보내고, 미술학원에 보내고, 그래도 분에 차지 않아서 가정교사를 두는 마당에... '지는 아이로 키우기'라니!
앞이 보이지 않는 경쟁 사회를 살아갈 아이에게 지는 것을 가르치려 하다니! 용기 있는 결단이 아닐 수 없습니다. 모두가 이기기 위해 악다구니를 써대면, 아무도 이기지 못합니다. 모두가 질 줄 아는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는 이긴다는 것만이 미덕일 수는 없습니다. 진다는 것, 질 줄 안다는 것은 많은 용기를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만이 아니라 나와 더불어 나처럼 소중한 '네'가 있다는 인식입니다. 나는 혼자가 아니라, 우리 속의 나라는 것. 이기주의가 팽배한 요즈음 강요해도 나쁘지 않을 덕목인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그분들이 말하는 '지는 아이로 키우기 운동'이 단순하게 내 아이에게 질 것만을 강조하는 운동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마땅히 이겨야 할 것도 포기하는 아이로 키우는 운동은 아닐 것입니다. 많은 양보심을 길러주는 것은 좋지만, 부당함에 맞서는 용기도 심어 주어야 할 것입니다. 새치기하는 사람에게 자리를 양보한다는 것은 지는 것이 아닙니다. 부당함에 저항하지 않음은 죽은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세상은 어차피 이기고만 살수는 없습니다. 지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독단적인 사람입니다. 자신이 질 수도 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정신병 환자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질 줄 아는 아이로 키우되, 포기하는 아이로 길러서는 안 될 것입니다. 포기하는 삶은 순응하는 삶입니다. 쉽게 포기하는 사람들이 사는 사회는 '이긴 몇몇'만이 판을 치는 사회가 될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단순하게 지는 아이로 키우기보다는. '고개 숙일 줄 아는 용기를 가진 아이'로 키우고 싶습니다. 당당하되 질 줄 아는 아이. 어떤 분야에 조금 뒤떨어져도 웃을 수 있는 아이. 그런 아이로 키우고 싶습니다. 아니 제가 키우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그렇게 자라 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습니다.
두서없이 떠오르는 생각을 적어 보았습니다.
www.e-siin.com 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