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서에 가장 많은 작품이 실린 작가는?
- 작성일
- 2001.05.24 12:49
- 등록자
- 리OO
- 조회수
- 2332
우리나라 교과서에 가장 많은 작품이 실린 작가는 누구일까요?
다른 누구도 아닌, 장흥이 낳은 소설계의 거장,
이청준 선생이십니다.
전라도닷컴에 실렸던 이정우 기자의 글을 퍼왔습니다.
어쩔 수 없는 장흥사람, 이청준
작가에게 고향은 무엇일까. 아니다, 글을 쓰는 작가들에게만 고향이 있는 것은 아니다. 말을 바꾸자. 우리 모두에게 고향은 무엇일까. 고향은 우리에게 무엇을 주고, 빼앗아갔으며, 어떠한 방식으로 우리의 삶을 옥죄고, 또 풀어주고 있는가.
이청준의 단편소설 <살아있는 늪>은, 고향이 '늪'이라고 말한다. 그것도 사람이나 짐승처럼 살아 있어서, 무슨 의도를 가지고 우리들의 갈 길을 붙잡는다는 식이다. 그 늪의 실체가 <눈길>에서는 어머니로 드러나고, '서편제 연작'에서는 아버지 아닌 아버지가 늪의 역할을 대신한다.
늪은 살아있을 수 없고, 어머니는 자식을 해롭게 하지
못한다. 아버지 아닌 아버지는 또 얼마나 모순적인 논법인가. 말하자면 '늪'으로 총칭되는 이청준의(우리들의) 고향은 우리들 스스로가 만들어낸 가상의 부채의식에 다름아니었던 것이다.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끌어 나가려 하니까 이청준 선생이 화를 냈다. 딱히 기자가, 기자 주변의 누군가가 이야기를 이처럼 사변적으로 주도했던 것은 아니다.
달리 말할 것도 없이 그는 '이청준'이었다. 교과서에 가장 많은 작품이 실렸다는, 한국 실험소설의 한 계보로 평가되는, 지식인소설·관념소설로 통용되면서 작고한 평론가 김현에 의해 가장 많이 칭송된 바로 그 소설가가 아니던가. 그와 이야기를 나누자니 '수준'을 맞춰야겠다는 생각에 누구랄 것도 없이 약간의 폼을 잡을 수밖에 없는 자리였다.
"그런 얘기 들으면 화가 나요. 있는 그대로 썼을 뿐이에요. 관산읍에서 용산면으로 넘어가는 솔치재 진흙탕 길에 차가 빠져 오도가도 못하게 되니깐 한 아주머니가, 당초에는 장흥장에서 팔려고 했던 엿을 버스 안에서 파는 겁니다."
"엿을 먹는 행위는 빠는 행위이고, 그것은 곧 모성으로의 회귀를 의미한다"는 <살아있는 늪>에 대한 김현의 평론을 두고 선생은 그저 사실대로 썼을 뿐이다, 고 말했다.
광주 서중에 입학했을 때, 장학금을 받기 위해 필요한 서류를 만드는 데, 당시 회진면 병사계 직원 때문에 당한 고충을 선생은 이야기했다. 속닥속닥 시어머니를 꼬드겨 옛이야기를 끄집어낸 '마누라' 때문에 <눈길>을 썼다고 고백했다. 조용조용한 말투로 가끔씩 키득거리기도 하면서 선생은 문학을 이야기하지 않고, 삶을 이야기했다. 문학은 관념이나 지식이 아니고 삶이라는 가르침이었다. 한국문단의 이청준이 아니고, 이날만큼은(언제나 그랬는지도 모른다) 장흥의 이청준이었다.
선생의 주변을 따라다니는 화려한 이력과는 상관없이, 바탕은 '촌놈'일 뿐이라는 아름다운 발견이 이날 이루어졌다.
5월11일, 순천대 문예창작과 석좌교수의 자격으로 문하생들을 이끌고 '장흥문학기행'을 위해 들른 천관산 장천재 한켠에서 나눈 대화와 풍경의 요약이다.
장흥출신인 이대흠 시인과 마동욱 사진가, 문예중앙 기자이기도 했던 남도대학 한강희 교수가 함께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