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공무원의 아내는 공장.식당에 다닌다.
- 작성일
- 2001.07.03 17:33
- 등록자
- 광OO
- 조회수
- 2609
가난한 공무원 아내는 공장·식당에 다닌다.
조호진 기자 jhj600105@hanmail.net
▲다산방에는 '정부미를 먹고 사는 촌놈들의 좋은 세상만들기' 라는 글이 뜬다.
ⓒ2001 조호진
하위직 공무원들의 토론사이트인 다산방(http://dasan.new21.org/2001.html)에 자정의 목소리와 비애감이 쏟아진다. 공무원의 노동기본권 보장요구에 정부가 파면·징계로 맞서면서 어느 때보다 긴장감이 팽배한 가운데 토해내는 하위직 공무원들의 목소리는 매우 진지하다.
국민들로부터 차가운 시선을 받아야 하는 집단 '공직사회', 그러나 대개의 하위직 공무원들은 박봉과 가족부양에 안간힘을 다한다. 하위직 공무원의 생계형 비리는 정부가 조장하고 있다는 여론이 나돈다. 공직사회 개혁과 공무원노동 기본권 보장의 목소리가 높아가고 있는 가운데 공무원들의 생각을 살펴보았다.
3일 '저승사자'라는 이름으로 다산방에 글을 올린 공무원은 부조리 관행에 일침을 박고 공직사회 개혁을 촉구했다.
이 공무원은 중학교를 졸업한 뒤 처음 만난 중학교 동창으로부터 느닷없이 "야이 도둑×의 ××야"라는 소리를 듣고 당황했다.
불쾌감을 접고 자초지종을 들어봤다. 70만원 짜리 관급 공사를 했다는 친구는 통장에 입금된 100만원을 받아들고 정성껏 일한 대가를 인정해 준 줄 알았다. 그러나 다음 날 담당 공무원이 30만원을 되돌려달라고 했다는 것이다. 사업비를 부풀린 뒤 빼먹는 수법을 쓴 것이다.
이 공무원은 친구의 말을 듣고 '해머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느낌이었다'고 표현했다. 그리고 친구에게 어떤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이 공무원은 검은 돈 챙기기를 통해 마련된 돈은 부서장 활동비와 부서 운영 경비로 사용된다고 밝히면서 공직사회에 관행으로 뿌리박혔다고 했다.
검은 돈을 만드는 데 공범이 된 사실이 자괴스럽다는 이 공무원은, 공무원 스스로 이러한 폐습을 고쳐나가는 것이 진정한 공직사회 개혁이라고 호소했다. 그리고 정부의 공무원 탄압에 대항할 수 있는 힘은 자정노력으로 국민들로부터 공감을 얻어낼 때 공무원노조 도입이 가능할 것이라고 매듭 지었다.
'저승사자'의 글에 맞물린 '팔마단기'라는 공무원 또한 "노조설립을 위해 지켜야 할 덕목 중 으뜸은 스스로의 자정활동이다"고 동의했다. 그리고 "손가락질 받는 밀고자가 아니라 정의를 위해서는 손가락질도 마다 않는 사도가 되어야 한다"고 공직사회 내부비리 척결의 결단을 촉구했다.
또 지난 1일 순천공무원직장협의회에 '공무원의 자기 혁신 없는 노조도입은 반대'라는 제목으로 글을 올린 '공무원노조 찬성'이란 네티즌은 공무원 노동기본권 지지의사를 밝히면서도 권력 하수인으로 지내온 50년의 세월을 끊어야 된다고 전제조건을 달았다.
이와 함께 전공련 결성은 "공직사회 개혁주체로 부정부패와 비리를 척결하고 공복으로 거듭나기 위한 선언이다"고 의미를 부여하면서 "국민들로부터 신뢰회복을 받는 가운데 공무원 처우개선 향상되어야 한다"고 당부했다.
하위직 공무원의 비애(悲哀) '공무원도 인간이다'
지난 6월 20일 다산방에 '침묵하는자'라는 이름으로 글을 올린 공무원은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하는 사회에 대해 '공무원도 인간이다'라고 항의했다.
9급 공무원으로 출발해 10여 년째 공직생활을 하고 있다는 이 공무원은 잦은 주말업무와 밤늦은 귀가로 인해 가족사랑도 깨졌다고 했다. 빠른 귀가를 재촉하던 아들도 지금은 포기한 상태라고 하소연 한 뒤, 하위직 공무원의 노동강도는 야근과 철야를 일삼는 근로자 못지 않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노동에도 공무원들은 "야근수당 4∼7만원을 받고 가정도 잊고 아들 얼굴도 못보고 일한다"면서 공무원의 일방적 희생은 노조가 없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또 박봉에 시달리는 공무원을 개혁대상으로 삼는 언론과 일부 국민의 모습을 볼 때 공직을 선택한 자신이 원망스럽다고 했다.
그리고 국가경제 살리기라는 명분으로 공무원의 희생을 요구하는 분위기에 대해 "공무원도 인간이다. 우리도 자유를 누리고 싶고, 가족과 놀러가고도 싶고, 업무를 떠나 개인적인 취미생활도 해보고 싶다"고 호소했다.
지난 4월 17일 글을 올린 '송사리'라는 공무원이 올린 글에는 하위직 공무원 가족의 어려운 생활이 그대로 드러났다.
공직생활 20년째라는 이 공무원은 백 몇 십 만원의 봉급으로 두 아이의 학비를 댈 수 없어 아내가 공장에 다녀 번 돈 40만원을 보태 자녀교육과 생활을 해결한다고 밝혔다. 동료의 아내들 또한 슈퍼 점원, 식당종업원, 전자공장 등에서 일한다고 전했다.
그리고 국민들의 '철밥통'이란 비난에 "철밥통... 그 밥통이 너무 작아서 배가 고프다."는 비감한 표현을 썼다.
공무원들은 산불비상으로 동원되는 봄이 두렵다.
이 공무원은 일요일 낮에 산불진화를 위해 산에 올랐다. 그리고 밤 10시에 다시 동원돼 새벽 4시까지 산불을 껐다. 그렇게 3·4월을 휴일도 없이 가파른 산등성을 오르고 구르며 보냈다고 했다. 또 4월 월요일마다 구제역 방역을 위해 경운기를 끌고 농가 축사에 소독을 친 뒤 겨우 자장면 한 그릇으로 허기를 채워야 했다.
이 공무원은 "아는 사람 앞세워 돈 몇 십 만원으로 유혹하면 뿌리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고 털어놓으면서 "아이들이나 아내나 옷을 사 입는 법은 거의 없고 전부 얻어 입힌다"며 도시 저소득층보다 적은 월급을 개탄했다.
이와 함께 "일반 회사만큼 월급을 주면 부정부패가 훨씬 줄 것이다"면서 "가난에 찌들려 처자식 고생시키는 공무원에게 돈의 유혹에 안 넘어가길 바라는 것은 너무 잔인한 일이다"는 비장한 말로 글을 매듭지었다.
'버스정류장이나 전봇대에 붙은 벽보를 보면 나도 모르게 뜯어낸다'
지난 6월 1일 '조은'이란 공무원이 다산방에 퍼다 놓은 글에는 공무원 생활 과정에서 겪는 애환과 웃음이 담겨 있다. '어즈버 태평년월이 꿈이련가 허노라'라는 제목의 해학적인 글을 옮겨 본다.
91년 7월, 첫 직장생활에 설레는 마음으로 넥타이 차림으로 출근했다. 사흘 째, 퇴근 무렵에 사무장이 조용히 불러 "내일부터 편한 옷 입고 오게"라고 말했다. 그때까지 동사무소 공무원이 노가다인줄 몰랐다. 어느 날 산불 신고에 "소방서에 전화하지 왜 여기다 전화합니까"라고 했다가 "야, 산불은 우리가 끄는 거야"라는 말을 듣고 무참했다.
보리쌀 1인당 2.5kg 잴 때 칼같이 해보기 위해 저울로 다는데 선배 공무원은 바가지로 했다. 두 달 후 나도 그렇게 했다. 각종 집계보고 할 때, 몇 날 며칠 열심히 두드려도 계산이 맞지 않는다. 선배가 "야, 뜯어 고쳐라 숫자만 맞추면 된다"
이 공무원은 아래 항목 가운데 절반이 넘으면 '이상 없는 동서기'라고 분류했다.
△버스 정류장이나 전봇대 등에 붙어 있는 벽보를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손이 가면서 뜯어낸 경험이 있다. △집에 돌아와 주머니를 뒤지면 담배꽁초나 쓰레기가 들어 있다. △노래방이나 술집 등에 들어가면 허가증에 눈길이 쏠리면서 가게 안을 두리번거린다.
△친구·친척집에 놀러가면 불법 증축한 부분이 눈에 띈다. △일기예보에 부쩍 관심이 늘어난다. △봄날 가족과 놀러 가는 사람들을 보면 왠지 모를 분노가 생긴다. △아침 창문을 열어 눈 온 광경을 보면 욕이 나온다. △주부들이 검은 비닐봉투를 들고 밤에 나선 것을 보고 쓰레기 무단투기 아닐까 싶어 뒤를 밟는다.
덧붙인 하위직 공무원의 애환으로 △자는 것보고 나온 아이를 또 자는 모습만 볼 때 △일요일 낮잠 꿈속에 할아버지, 할머니가 나타나 쌀 좀 더 달라고 할 때를 꼽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