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0여일간 유라시아 철길 횡단을 하겠다" 아무리 황당하게 들릴지라도 그 황당한 일의 주체가 '마동욱'이라는 걸 알고 나면 그를 아는 사람들은 대개 고개를 끄덕거린다. "마동욱이라면 해내고야 말거야" 그를 아는 이들은 이미 그에게 그렇게 길들여져 있다. 절레절레 고개젓고 손들게 만들고야 마는 남다른 열정과 집념을 알고 있는 것이다.
댐건설로 수몰될 고향 마을의 사진들을 찍어온 사진가 마동욱(43). 지난해 그가 목포역에서 문산역까지 한달간 철길도보기행을 하겠다고 나섰을 때 누구도 그 계획이 성사되리라고는 믿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고향 후배인 이대흠 시인과 6월24일 목포역에서 출발했고 7월23일엔 문산역에 도착했다. 철길을 걷겠다고 허가받으러 철도청에 처음 갔을 때 그는 얼빠진 사람 취급을 받았다. "우리나라 철도 100년 역사상 전무후무한 일"이라며 딱잘라 "안된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때 그는 가슴이 벌렁벌렁 뛰었단다. "야, 이것은 진짜다"라는 두근거림, 꼭 하고 말겠다는 다짐 때문에.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이라면 꼭 걸어볼 가치가 있지 않은가, 누군가는 그런 경험을 해야 하지 않는가", 그게 그의 생각이었다.
이번 유라시아 철길기행은 지난해 통일을 염원하며 걸었던 목포~문산역 철길기행의 연장이다. 임진각에서 중단했던 걸음을 다시 잇는 행위다. 그래서 그가 붙인 여행제목도 '목포에서 런던까지'이다. 북한을 거치지 않는 게 몹시 아쉽다. 하지만 마동욱이라면 그 아쉬움을 가슴깊이 꼬불쳐두었다가 종내 또 일판을 벌일 것임을 주변 사람들은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이번 유라시아 대장정(7.14~8.15)은 속초항에서 출발, 블라디보스톡에 도착한 다음 하바로브스크, 울란우데, 이르쿠츠크, 크라스노야르스크, 노보시비리크, 모스크바, 뻬쩨르부르크, 베를린, 취리히, 루체른, 로마, 파리 등지를 거쳐 런던에서 맺음된다. 일행은 그를 포함해 4명. 김선욱(작가), 김영호(PD, KBS수요기획 제작팀, 인터넷 방송 비전투어 소속), 김매쇠 (방송팀 FD)씨 등이 동행한다.
 
▲장흥 유치 마지막 농사 고추 ▲부산면 유량리 고인돌
"왜 떠나냐"는 우문에 그는 "몸으로 부딪치고 싶어서, 남이 하지 않는 일이어서, 새로운 길을 새로운 시각으로 보고 느끼고 싶어서"라고 답했다. "고생을 하지 않으면 얻는 게 없다" "몸으로 깨달은 것만이 진짜다"는 믿음이 그에겐 있다. 지난해 철길도보를 두고도 그는 "걸어갔기 때문에 많은 것을 얻었다"고 말한다. "차를 타고 갔으면 그렇게 많은 생각들을 얻지 못했을 것이다. 너무 힘들어서 때로는 바닥을 네발로 기는 기분이었다. 모든 것 버리고 몸 하나로 버팅겼다. 그렇게 만난 사람들이고 풍경이었기 때문에 내게는 의미가 컸다. 모든 것이 껍데기를 벗고 속살로 다가왔다" 마을 전경같은 사진을 찍을 때도 마찬가지란다. "비행기타고 찍으면 좋은 사진이 나올지도 모르지. 하지만 산꼭대기로 땀 뻘뻘 흘리고 올라가서 찍어야만 스스로 진짜라는 느낌이 든다."
그가 그동안 찍은 고향사진들도 이번에 그 무모한 주인덕분에 외국여행길에 나서게 됐다. 짐이 얼마나 될지 짐작이 안된다. 그는 50여점에 이르는 이 사진작품들을 데불고, 가는 곳마다 철도역 등지에서 전시회를 할 생각이다. 지난해 철길기행사진, 장흥·강진 등 탐진강 문화권에 속한 마을들의 풍경, 온갖 농사일과 사람들의 삶의 모습, 고싸움과 농악놀이 등 한마디로 '한국적'이랄 수 있는 풍경과 정서들이 담긴 사진들로 그곳 사람들에게 한국을 알릴 생각이다. "한국을 알린다는 생각으로 욕심을 낸다면 전국의 많은 문화와 풍경들을 아울러야겠지만 욕심내지않고 이 촌놈의 눈에 잡힌 내 고향을 가지고 가고 싶다. 장흥이라는, 대한민국 최남단 시골, 발전에서는 소외됐을지 모르지만 아직도 우리 것이 남아 살아있는 작은 내 고향의 정겹고 가슴아리고 눈에 익은 모습들을 시베리아 아니 유럽에 알리고 싶은 것이다"
 ▲고향에서 마지막 모내기
여행동안 전시뿐만 아니라 유라시아 철길주변의 사람들과 삶의 풍경을 찍어올 것이다. 과거와 현재가 켜켜이 쌓여있는 철길의 역사, 오랫동안 따뜻한 눈길 받지 못한 채 제 혼자 존재해왔을 풍경들이 그의 카메라에 담길 것이다. 이번 여행에 소요될 비용은 3천만원정도. 이 길떠남을 위해 그동안 철가방 들고 배달하면서(그는 장흥에서 '빛과 그리고 그림자'라는 분식집을 하고 있다) 조금씩 모아온 돈도 다 쏟아부었고, 빚도 지고, 얼마간은 고향 선후배들의 도움도 받았다. 그런 도움과 지지가 그에게는 다 마음의 빚이고 멍에다. "이렇게 사람들의 도움을 받고 살면서 마동욱이가 제대로 살아야지 함부로 살면 되겠냐"고 생각한다. 늘 갚아야 할 것이 많다는 마음으로 산다. 가족들에게는, 특히 아내에게는 늘 미안하다. "밖에서는 '너 잘한다'고 대접받더라도 집에서는 나는 항상 '미친놈'일 것이다. 그런 말 들어도 싸다. 가족의 희생이나 인내가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니까...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행복한 놈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누가 나처럼 살겠다고 하면 말리고 싶다" 왜 말리냐구? "돈 안되는 일만 고르고 골라서 사는 인생"이기 때문이다. "열여섯 어린 나이에 떠난 고향에 다시 돌아온 지도 벌써 3년째이다. 고향의 언저리를 배회하며 고향을 들락거린 것은 14년째. 우연히 시작한 고향마을 사진 찍기를 끝내 뿌리치지 못한 것이 14년의 세월이 흘렀다. 수몰될 고향마을을 찍는다고 그간 난 많은 언론을 통해 소개가 되었다. 그것이 질시에 찬 오해와 상처를 가져오기도 했지만, 이제는 책임감때문에도 내 삶의 거의 모든 부분을 고향 사진 찍기에 보내고 있다"
배달 열심히 하고 식당 착실히 꾸리면 먹고살기야 더 편하리라는 것을 그가 모르는 게 아니다. 하지만 배달통도 들고 다니고 카메라도 메고 다니고...그런 온갖 현실의 부대낌속에서, 그 '틈바구니'에서 일궈내는 것이야말로 삶의 모습에 보다 가까울 것일 것이라고 그는 위안한다.
길을 나설 때는 늘 "이것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떠난다. 그만큼 절박하다. 목숨건다. 하지만 이번이 마지막이 아닐 것임을, 또다른 새로운 출발점일 것을 그를 아는 사람들은 벌써 짐작하고 있을 것이다. 또 그는 무모하고 황당한 계획으로 주변사람들을 놀래킬 것이고 마침내 또 현실화시킬 것이다. "비록 돈을 버는 일은 단 한번도 제대로 하지 못했지만 내가 하고자 했던 일들은 시기를 조금 놓치더라도 하고야 말았다. 그것이 곧 내가 사는 의미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떠나고 돌아오는 원심력과 구심력의 조화 혹은 긴장속에서, 역마살같은 그의 길떠남도 고향마을에서의 사진작업도 계속될 것이다. 남신희 기자(miru@jeonlad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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