뽕과 누에그라
- 작성일
- 2001.07.23 13:36
- 등록자
- 동OO
- 조회수
- 2252
뽕과 누에의 한국학
부자만이 쓸 수 있는 뽕나무
중앙아시아 재래 시장에 가면 한 자 남짓 가지런하게 팬 뽕나무 장작을 팔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뽕나무 장작으로 양고기를 구으면 맛도 좋으려니와 양기를 돋우는 보양(補陽)효과가 커서 상류계급 아니고는 쓰지도 못 한다고 들었다.
그 중에서도 곱절로 비싸게 받는다는 장작이 있어 그 이유를 물었더니 해가 있는 남쪽으로 자라난 뽕나무를 잘라 만든 桑南枝(상남지) 장작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뽕나무가 양기(陽氣)의 원천이라는 상상은 고대 중국에서 확고하게 자리잡고 있었다. 양의 근본인 확고하게 자리잡고 있었다. 양의 근본인 태양이 동쪽에서 돋는다고 하여 중국에서 동쪽에 있는 한국을 부상국(扶桑國)이라고 하였으며, 《삼국지》에 촉나라의 천자 유비가 뽕나무 정기를 타고 태어났다는 것과 음(陰)인 잡귀를 쫓는다는 뜻에서 신주를 뽕나무로 만드는 것 등도 바로 양(陽)의 철학에서 생겨난 것들이다.
우리 풍속에 처녀들이 뽕을 딸 때 뽕나무의 Y자 가지에 오래 걸터앉안 있지 못하게 했는데, 그렇게 하면 양기가 들어가 애를 밴다고 믿었던 것도 바로 같은 발상이다. 궁중에서 임금님의 보양제인 경옥고를 달일 때 개나 닭소리가 들리지 않는 깊은 산중에서 뽕나무로 고아야 약효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래서 뽕만 먹고사는 누에를 태양의 벌레라는 뜻으로 천충(天蟲) 또는 천잠(天蠶)이라 우러렀던 것이다.
수나방의 사랑
이렇게 양기의 결정(結晶)인 뽕만 먹고 자란 누에인지라 누에는 산 것뿐 아니라 죽은 것·똥·허물·고치·나방·번데기, 그리고 알이며 알이 부화하고 나간 뒤의 종이까지 약이 되지 않는 것이 없다. 대체로 부인병, 피부미용, 당뇨나 소갈 등 《본초강목》에 나온 약방만도 100여 방에 이르고 있다.
그 중 남자의 정력을 돋우고 정력에 연계된 약방이 많은데, 이를테면 수나방의 약효를 옮겨보면 이렇다. 고치 속에 잠든 번데기가 열흘쯤 되면 나방이 되어 고치를 뚫고 나오는데, 수나방은 나오자마자 암나방을 찾아간다. 마치 잠자는 동안 성욕만을 억제하고 있다가 폭발 직전인 것처럼 찾아가 포옹을 한다.
어쩌면 곤충 아니 동물 가운데에서 가장 진하고 가장 오랜 사랑이 시작된다. 왜냐하면 반나절, 경우에 따라 하루 종일 사랑을 하기 때문이다. 이 정력적인 사랑으로 수나방은 사랑하는 시간에 비례해서 서서히 쇠잔해 간다. 모든 에너지와 정력을 암컷에게 쏟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사랑이 끝났을 때 수나방은 죽어 있게 마련이다. 수나방은 이렇게 성을 위하여 세상에 태어났다가 세상을 떠난다.
이 부러운 정력을 교활한 인간이 놓칠 수가 없다. 고치에서 나와 암놈 찾아 돌진하는 수나방을 잡아 목과 날개와 발을 떼어내고 정력 탱크인 몸통만을 두되쯤 볶아서 가루를 낸다.
이 가루에다 꿀을 섞어 환약을 만들어 놓고 하루에 한 알씩 먹으면 그 정력이 옮겨와 하룻밤에 열 명의 여자와 사랑할 수 있다고 고전 의서인《천금방》에 적혀 있다.
너무 과하여 성욕을 억제하려면 창포로 담은 술을 먹으면 된다고 했다. 발기 부전이나 유정(遺精)을 하거나 하면 이 수나방 가루에 밥을 이겨 녹두알만큼 환약을 만들어 한 번에 40알씩 먹으면 효험을 본다고 했다.
양기뿐 아니라 소갈에 번데기 삶은 물을 정기적으로 마시면 좋다고 했고, 실을 뺄 때 담그는 조사탕(繰絲湯)도 소갈에 크게 효험이 있다고 했다. 누에똥의 약방도 다양한데 이 누에똥을 누렇게 볶아 술에 담가 마시면 소갈에 좋고 풍을 예방한다고 했다.
또한 상사병에 걸린 총각이 있으면 누에똥을 얻으러 다녔는데, 만잠(晩蠶)의 누에똥 한 량을 물에 달여 먹이면 병이 낫는다고 했으니, 뽕과 누에는 전통 의약에서 비중이 무척 컸음을 미루어 알 수 있다.
(이규태 칼럼)白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