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흥이야기
- 작성일
- 2001.07.24 13:09
- 등록자
- 버OO
- 조회수
- 2751
죽은 자도 떠나야 하는, 수몰
탐진댐 수몰민 '파묘'의 현장
2003년 완공 예정인 장흥군 유치면 탐진댐 건설 현장, 포크레인과 덤프, 바위를 깎고 산을 뒤엎는 기계음으로 사위는 소란함 그 이상이다. 유치면에서 장흥읍으로 나갈 때 넘어야 하는 빈재, 그 왼편 '오가제'라 불리는 골짜기는 그러나 기계음 대신 삽질 소리로 요란하다. 2001년 7월10일, '파묘'의 현장이다.
기왕에 진행되는 댐건설 현장에서 파묘·이장은 당연한 조치이다. 하지만 조상의 땅을 지키지 못했다는 송구함 때문에 이기남씨(62세·유치면 대리 2구)는 파헤쳐지는 봉분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한다. 이씨는 이날 9대조부부터 젊은 나이에 요절한 아우 평식씨의 묘까지 합쳐 일곱기의 봉분을 옮겼다. 묘지앞 푯말에 쓰여진 <20간-∼37>과 같은 글자들. 이전보상을 위해 산 자들이 죽은 자들에게 붙여준 '이름'이다.
어떤 방식으로 이장(移葬)할 것인가를 두고 문중의 의견이 분분했지만, 종손 역할을 하고 있는 이씨의 적극적인 주장이 관철됐다. 이씨는 "산이고 강이고 간에 함부로 건드려서는 안된다"며, "두어평 남짓한 공간에 32기의 선영을 모실 수 있는 '가족납골묘'를 조성했다"고 말했다. 댐 건설로 인한 자연의 파괴현장을 몸소 체험한 처지에서 본인마저 '환경파괴' 행위에 동참할 수는 없다는 이야기를 덧붙였다.
하나 둘씩 봉분의 '속'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제일 먼저 삽질을 시작한 9대조부 묘에서 두골 일부와 정강이 뼈가 발굴됐다. 한세대를 30년으로 잡을 경우 270년은 족히 되는 세월 동안 사라지지 않고 남은 조상의 흔적 앞에서 이씨는 잠시 숙연해졌다. 보첩에서만 보던 '할아버지'를 실제로 보게 된 이씨의 심정은 남달랐다. 종손이라는 이유로 꿈을 접고 고향에 파묻혔던 젊은 시절과 매년 치르는 제사, 시제, 명절… 등의 '짐'이 모두 저 뼈에서부터
시작됐다는 애증의 감회였다. 6대 '할머니'는 마치 미라처럼 가지런하게 그 모습을 드러냈다. 목관을 백회칠로 마감한 까닭이다.
2001년 7월22일, 서울 인천 대전 등지에서 4촌 6촌 8촌에 이르는 20여명의 친족들이 가족납골묘를 찾았다. 그냥 1기의 묘로 볼 경우 큰 편에 속했으나 그 속에 32명에 달하는 유골을 안치할 수 있다고 하니, 더 크더라도 상관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32기의 '봉분들'보다는 그 모두가 한곳에 안치된 조금 큰 1기의 납골묘가 친환경적이라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또한 '따로 또 같이' 성묘하고 흩어졌던 지난 시절 명절의 경험에 비추어, 이렇게 한날 한자리에 모인 것만으로도, 가족납골묘는 '혈족통합' 기능이 훨씬 강해 보였다. 수몰도, 원치 않은 이장도 다 아픔이지만, 그 아픔을 이기남씨 문중은 지혜롭게 해결해가고 있었다.
전라도에서 퍼옴
- 최종업데이트
- 2025.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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