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것좀 보셔요....
- 작성일
- 2001.07.24 13:36
- 등록자
- 버OO
- 조회수
- 2482
리장에서 퍼옴 |
나는 녀석들의 무심을 깨뜨리는 것이 미안하여, 발소리를 죽이며 걷습니다.
녀석들 뿐만 아니라, 땅 속 어딘가에 숨어있을 굼뱅이나 개미를 생각하면, 이 큰 몸뚱이의 느닷없는 방문이 얼마나 죄스러운 일입니까?
고구마 이파리입니다.
이 비 지나면, 잎사귀는 더욱 무성해지겠지요.
이곳에서는 고구마를 감자라 하고, 감자를 하지감자라 합니다.
잎이 너무 무성한 감자는 밑이 실하지 못하다고
어머니는 자꾸 줄기를 잘라내곤 하였지요.
고구마 잎싹 너머로 풋고추가 보입니다.
댕댕히 살 오른 고추.
물기마저 머금어 세상에 두려울 것이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때로 너무 가까이 있는 것은 보이지 않습니다.
가장 향기로운 꽃도 너무 가까이 있을 때는 희미하고,
내 눈엔 이따금 먼데 있는 이파리만 선명하게 보이곤 합니다.
비에 젖어도 가지꽃은 가지꽃으로 피어 있습니다.
보라색도 이 정도의 보라라면, 풍덩 빠져볼만 할 것 같습니다.
물끄러미 제가 지나온 세월을 뒤돌아보듯
자신의 뿌리가 있는 황토를 바라보는 가지꽃을 보면서
자성이 깊은 식물 앞에서 한없이 부끄러웠습니다.
밭 하나에서 우리들이 먹을 모든 것이 나옵니다.
이 밭에서 나는 것으로 우리들은 반찬을 만들 수도 있고,
간식으로 옥수수를 삶아 먹을 수도 있습니다.
생강 이파리는 산죽의 잎과 유사합니다.
키도 제법 커서 산죽 만큼은 자랍니다.
인간들이 양념이라는 것을 알고부터 없어서는 안될 식물이 된
생강입니다.
뽀득 뽀득 잎새를 내미는 생강의 이웃은 꽃상추입니다.

상추라는 말 앞에 왜 꽃이라는 접두사가 필요했는지.
실감이 나는 이파리입니다.
상추라는 말은 이전에는 전라도 방언이었는데,
널리 쓰이다보니, '상치'라는 표준말을 밀어내고,
자기가 표준말이 되었지요.
꽃보다 열매가 아름다운 식물이 딸기라면,
꽃보다 잎새가 아름다운 식물은 꽃상추일 것입니다.
쓰레기 더미로 둥글어진 밭둑에는 오이가 한창입니다.
오이꽃에는 암수가 따로 있습니다.
한 줄기 안에 암수의 꽃을 따로 피워,
거기에서 암꽃만이 열매를 맺습니다.
그러므로 오이의 줄기를 인간사에 비한다면,
가계입니다. 그래서 오이 줄기는,
씨족사를 다루는 역사책 같습니다.
꽃과 꽃 사이를 가르는 것도 제 줄기입니다.
- 최종업데이트
- 2025.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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