썩어도 이렇게 썩을수가!
- 작성일
- 2002.01.21 14:14
- 등록자
- 부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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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03
충북지역 공무원과 건설사의 건축비리 관련 녹취문 공개
국가기관, 공무원, 건설회사의 거짓말 커넥션
한 60대 초반 여성이 건설비리 의혹을 제기하며 국가기관과 건설회사를 상대로 3년여에 걸친 법정투쟁을 전개하고 있다. 국가기관과 건설사가 자연재해에 대한 복구공사를 빌미로 사유재산 침해는 물론 절도까지 자행했다는 것이다. 물론 피고소인들은 혐의를 전면 부인하고 있다. 검찰도 이미 그녀가 "토지보상금액이 적어 이의제기나 고소를 한 것으로 판단된다"며 피고소인들의 손을 들어준 바 있다. 이에 따라 본지는 그녀가 건설비리의 움직일 수 없는 증거라고 주장하는 녹취문들을 입수, 공개하기로 했다.
이종태 jtlee@digitalmal.com
'거짓'이 '진실'한 표정을 짓기란 결코 어렵지 않다. '거짓'이 조직과 권위, 연고로 무장하면 때론 '진실'보다 더욱 진실하게 보일 수도 있다. 사법기관마저 종종 거짓을 진실로 판정, 사회적인 정당성까지 부여해 준다.
그래서 진실을 밝히는 것은 실로 어려운 작업이다. 이 작업에 전문적 지식이 필요할 때는 더욱 그러하다. 우리 사회의 경우 건설부문 관련 비리에 대한 구설수가 수없이 떠돌고 있지만 이 중 비리로 판명되는 것이 얼마 되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하의 기사는 한 평범한 60대 초반 여성이 건설비리에 도전, 진실을 일부나마 파헤친 이야기다. 그녀는 웬만한 기자들도 감히 이뤄내기 힘든 일을 엄청난 시간과 노력, 사비를 들여 성취해 냈다. 이 사건의 개요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겨울비 내리던 3년 여 전의 어느 날 밤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무너진 야산, 그리고 3년에 걸친 투쟁
지난 1997년 11월 22일 밤, 충북 제천시 한수면 36번 국도변 송계계곡 입구에 있는 야산 절개지(충북 제천시 탄지리 산 70번지)가 비로 인해 무너져 내렸다. 이로 인해 7천여 톤의 흙과 돌이 도로로 흘러내리면서 제천 방면으로 들어가던 차량들이 10여km나 우회해야 하는 교통난이 발생했다.
담당 관청인 대전국토관리청(이하 대전청)이 도로를 복구하고 사고원인인 야산을 다시 무너지는 일이 없도록 공사했다면 이미 끝났을 일이었다. 그리고 4개월 여가 지났다.
1998년 3월, 오랜만에 부친이 남긴 야산을 둘러보러 온 정선숙씨(60)는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도로에 인접한 야산 절개지 부분만이 아니라 산 전체가 폭격을 맞은 것 처럼 파헤쳐져 있었다. 그때까지 대전청은 그녀에게 공사한 사실조차 통보해 주지 않고 있었다.
도로가 흙에 덮여 차량통행이 불가능한 시급한 상황에서 대전청이 소유자에게 알리기 전에 공사에 돌입한 것은 일견 당연했다. 그러나 공사 후에도 통보해 주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더욱이 산 전체를 폐허처럼 만들어 놓고 마무리 공사조차 하지 않은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정씨는 다음 달 대전청을 찾아 마무리 공사를 요구했으나 시원한 답변을 얻어낼 수는 없었다.
"직원들은 연락 못한 것은 미안하다는 거예요. 그러나 예산이 없어서 더 이상의 공사는 불가능하다는 식이었습니다. 시공사는 현대건설이었는데 예산으로 5억원이나 썼대요. 그런데 동네 사람들은 흙만 치우고 갔다고 했고 내가 본 상태도 그랬어요. 더욱이 야산에서 1백여 m 떨어진 충주호에 산에서 흘러내린 토사를 쏟아 부었다는 겁니다. 토사처리 비용도 거의 안 들어갔던 셈이죠. 그래서 5억원을 어디에 썼냐고 따졌어요."
정씨의 주장에 따르면 대전청은 정씨 소유의 산을 폐허로 방치한 상태에서 공사를 하지 않고 있었고 할 의지도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전청의 주장은 완전히 다르다. 대전청과 건설교통부가 지난 1999년 3월 낸 '정선숙 민원 관련' 자료에 따르면 이 공사는 1998년 7월 15일까지 7개월에 걸쳐 진행되었다. 정씨가 항의하던 시점(1998년 4월)에도 공사가 진행되고 있었다는 뜻이다.
그러나 정씨의 입장에서 '대전청이 더 이상 공사를 계속할 의지가 없다'고 판단했고 공무원들과의 접촉에서 그만한 정황이 발생했다는 것은 그녀가 당시 건설교통부에 마무리 공사를 청원하는 진정서를 제출한 사실에서 확인될 수 있다.
그녀의 항의 때문인지 1998년 6월 항구복구 공사비로 10억 여 원이 책정되면서 담당 관청이 대전청에서 충주국도유지건설관리사무소(이하 충주국도)로 이관되었다.
정씨는 이해 9월 말 충주국도 소장실에서 박아무 소장과 허아무 보수과장을 만나 공사 추진계획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정씨에 따르면 박 소장은 "이 공사와 관련해서는 앞으로 허 과장을 만나 이야기를 들으라"고 권유했는데 이로써 정씨와 허 과장의 악연이 시작된다.
기자는 취재과정에서 정씨로부터 허 과장의 당시 행적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으나 기사화는 일단 보류하기로 했다. 정년퇴직한 이후 개인사업을 한다는 그에게 여러 차례 연락을 시도했으나 지금까지 접근이 허용되지 않고 있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정씨는 허 과장의 당시 발언과 행동으로 미루어 그가 자신을 설득해 모종의 경제적 이익을 챙기려고 했다고 보고 있다.
그녀는 허 과장의 요청에 따라 충주의 한 커피숍에서 그를 서너 차례나 만났다. 허 과장이 민원인인 정씨를 충주국도 사무실이 아니라 사적인 장소에서 만나려고 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정씨는 지난 1998년 6월 말 그를 성희롱 혐의로 고소하기도 했다.
국가기관과 건설회사의 거짓말 커넥션
이 같은 과정에서 그녀는 "공무원들이 내 산을 이용해 흉계를 꾸미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면서 엄청난 불신감에 사로잡히게 된다. 이에 따라 정씨와 공무원들이 '공사 관련서류(설계도면 등) 제출'을 둘러싸고 승강이를 벌이는 가운데 기공승낙이 미루어지자, 충주국도는 이듬해인 1999년 2월 일방적으로 재착공(2차 공사)에 들어간다. 공사는 그러나 소유자의 승낙을 얻지 않은 '불법공사'라는 정씨의 이의제기에 따라 한 달여 만에 중단된다.
그러자 충주국도는 정씨 소유의 야산에 대한 토지편입 신청을 제출, 1999년 6월 산 70-4, 5, 6번지를 국유지로 편입시키고 공사를 재개(3차 공사), 그해 11월 복구공사를 완료했다.
한편 정씨는 야산 절개지 붕괴(1997년 11월) 직후 이루어진 1차 공사는 물론 2차 공사와 3차 공사에서 대전청, 충주국도, 건설회사가 결탁, 정씨 사유지에서 나온 토사를 민간인에게 판매하고 토사처리 부문에 해당되는 예산까지 챙겼다고 주장해 왔다. 절도 및 사유지 침해로 얼룩진 총체적 비리공사라는 이야기다.
그러나 충주지방검찰청 충주지청은 지난 8월 3일 정씨가 2, 3차 공사의 시공사인 대림개발과 충주국도를 대상으로 낸 고소사건에 대해 "설계측량대로 시공이 되었으며 공사 중 고소인의 사유 임야를 훼손한 일이 없고 토사를 개인에게 판매한 사실이 전혀 없다"는 피고소인과 참고인(충주국도 직원)의 진술을 인정했다.
시공사인 대림개발은 지난 5월 청주도시산업선교회 등의 관련 질의에 대해 다음과 같은 내용의 답변서를 냈다.
"토사를 버린 것이 도로부지 및 지정된 사토장에 현재 야적되어 있고, 민원인의 요구에 의해 15톤 트럭 30대 정도를 주었지만 돈을 받고 팔아먹은 적은 없습니다."
대전청도 지난 7월 시민단체들로부터 비슷한 질문을 받았다.
시민단체들이 "공사과정에서 나온 토사는 3km 밖에 버리게 되어 있는데 그 비용은 충주국도측에서 토사를 판 대금을 공제하고 지급한다"는 충주국도 직원의 발언과 관련, 이는 토사판매를 시인한 것이 아니냐는 질문이었다. 대전청은 이렇게 대답했다.
"시공사가 토사를 개인에게 팔았다면 토사를 버리는 비용에서 삭감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의견을 제시한 사항이나, 확인 결과 토사를 판 것이 아니고 설계상 지정된 장소에 버려서 삭감처리하지 않았음."
공사 예산에서 토사처리 비용에 해당되는 부분을 그대로 시공사에 지급했다는 뜻이다. 대전청은 '확인'까지 했다고 답변했다. 그러나 정말 '확인작업'이란 걸 한 것일까. 만약 정씨의 사유지에서 나온 토사가 인근 주민들에게 판매되었는데도 해당 예산이 그대로 집행된 것이 사실이라면 이는 분명히 절도인 동시에 국고유용이다.
정말 심각한 문제는 이 같은 토사 불법매매에 대한 사실확인이 대전청 같은 조직이 아니라 개인의 힘으로도 충분히 확인가능한 사안이었다는 데 있다.
정씨는 1999년 하반기부터 탄지리 인근 마을들을 돌아다니며 토사판매 여부에 대한 사실을 조사해 왔다. 그녀는 변호사의 권유에 따라 실제로 토사를 구입했던 주민들의 증언을 녹음기에 담아 서초합동속기사무소에서 녹취록을 만들었다.
기자가 A4 용지 2백53매에 이르는 그녀의 녹취문을 검토한 뒤 이르게 된 결론은 이렇다.
사고 직후 시행된 1차 공사 때 선착장을 짓고 있던 인근 ㄹ 관광산업에서 트럭당 1만원 정도로 정씨 소유지에서 나온 토사를 구입했다. 2차 공사 때도 ㄹ 관광산업 선착장과 인근 아무씨 종가의 부지에 적어도 수천 트럭 분량의 토사가 5천 원에서 2만 원 사이의 가격으로 처분됐다. 3차 공사에서도 국가에 수용된 산 70-4, 5, 6과 정씨 소유로 남아있던 부지에서 나온 토사가 아무씨 종가 부지, ㅇ 선착장, 유스호스텔, 인근 송계리 등에 2만 원 내외의 가격으로 판매되었다.
이제 정씨의 녹취문을 살펴볼 차례다. 녹취문 일부를 그대로 옮긴다. 사투리나 말이 끊어지는 부분엔 뜻이 왜곡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괄호 안에 표준말을 넣었다.
"2만 원씩 수십군데 갖다 부어줬어"
▲이아무씨(인근 아무씨 종가 종친회 총무)
정선숙 : "거기 5천 원씩이었잖아. 그 집은?"
이아무 : "우린 5천 원씩이지."
정 : "몇 차나 가져다 부었길래 그렇게 대단지가 된 거요? 어느 정도 부어야."
이 : "세다가 잊어버렸지 뭐."
정 : "영수증 안 받았어요?"
이 : "아이(에이), 돈을 주면 쌀(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 돈을 줘야 안 걸린다며, 안 걸린다며?"
▲김아무씨(마을 주민)
정선숙 : "몇백만 원씩 줬죠?"
김아무 : "가까운 데는 5천 원이고 먼데는 만 원씩이야."
정선숙 : "선금으로 다 준다 그러던데?"
김아무씨 : "선금 줘야지. 그건 말하자면 몇 차 갖다 부으라면, 몇 차 값 달라고 하고 자꾸 실어다 부었다고. 돈부터 받고 실어다 준 거야. 그 값어치를."
▲남아무씨(ㄹ 관광산업 관리부장)
남아무 : "거저는 안 돼."
정선숙 : "한 차에 얼마예요?"
남 : "한 돈 만원씩 주고 사야 돼. 거리가 있기 때문에."
▲석아무씨(송계문화마을 주민)
석아무 : "전체 물량을 가지고 아마 계약을 했는데 중간에서 '차(트럭)당 하자'고 해서."
석 : "하루, 한나절 채웠는데 흙이 불어나지를 않아. 무작위로다 차(트럭) 세 대를 세워가지고 한쪽에 부으라고 그랬지. 우리도 공사자리(공사터) 파놓은 게 있으니까 그걸로 떠보면 알잖아요."
정 : "그럼."
석 : "한 바가지(트럭)가 8루베니까, 보니까(확인하니까) 반 차(씩) 싣고 왔더라고, 반 차."
정 : "그것들이 그런다고."
석 : "여기서 차(트럭)당 해가지고 흙에서 한 4천만 원 날아갔어."
석 : "(흙을 트럭에 채우지 않고 실어와서) 붙잡고 이야기를 하니까, 과적에 걸리면 어떻게 하냐 이 얘기야. 그런데 과적에 걸릴까봐, ㅊ 파출소, ㄷ 파출소, 우리가 하마(벌써) 파출소에 다 이야기 해놨어. 우리가 이러니까."
▲김아무씨(ㄷ 휴게소)
김아무 : "여기는 2만 원이면 돼. 이런 데 하면."
정선숙 : "2만 원이면 되겠어요, 여기?"
▲이아무씨(인근 종가 종친회 총무)
이아무씨 : "(정씨가 자꾸 캐묻자) 아, 지(제) 돈 주고서 그게 뭔데. 우리가 불법이야 그게? 돈 준 놈이 무슨 죄가 있어."
▲다른 이아무씨(종가 종친회 전 총무)
다른 이아무씨 : "천만 원은 안 들어갔을 거야. 흙값만."
정선숙 : "그럼 천만 원 가까이는 들어갔구만?"
이 : "응 가까이 돼. 그거 뭐 자꾸 그렇게 꼬치꼬치 물어봐? 대림이 걔들은."
정 :"대림개발?"
이 : "수석에서도 좀 실었고, 수석 버리면서도 돈 벌고, 공사 따가지고 벌었단 이야기야."
정 : "그 집만 받은 것도 아니잖아. 송계도 받고 동네 이웃에도 그걸 다 받았는데."
이 : "아니, 한두 군데 갖다 부은 게 아니야. 내가 이거 수십 군데 갖다 부어줬어."
"돈 안 줬다는 각서도 부르는 대로 써 줬어"
토사를 직접 구입하지 않은 주민의 증언은 게재하지 않았다. 그래도 토사거래가 이뤄졌다는 사실은 생생하게 증명되고 있다.
녹취록에 따르면 토사를 판 대림개발측이 돈을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아무씨 종중측에서는 영수증도 요구하지 않았다. 종중측에서는 정씨 소유 야산에서 나온 토사를 가장 많이 구입한 것으로 보이는데 이에 대해 자꾸 캐묻자 "(돈을 받은 것도 아니고) 준 것이 죄냐"며 신경질을 내기도 한다. 한편 송계마을의 경우 당시 대량의 토사를 들여와 부지를 정비했는데, 토사를 나른 건설회사측과 거래방법(총량이냐 트럭당이냐)을 둘러싸고 협상을 벌이는가 하면 토사량을 속이는 바람에 다투기까지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림개발측은 지난해 10월 토사 불법매매에 대한 정씨의 주장이 지역 주간지인 『충청리뷰』에 게재되자 "추후 확실한 증거제시 없는 제보 또는 진정으로 당사의 명예가 실추될 때는 명예훼손으로 법적 조치를 취하겠다"는 내용의 통고서를 정씨에게 보낸 바 있다.
대림개발에 하청을 준 담당 국가기관들은 감독에 소홀했던 책임만 지면 되는 것일까. 그러나 이 기관들이 토사 불법매매에 개입했을 지도 모른다는 개연성이 또 다른 증거에서 제시되고 있다. 대전청과 국도유지 직원들이 토사를 구입한 주민에게 '토사는 받았지만 돈을 주지는 않았다'는 내용의 각서를 요구했다는 것이다.
▲이아무씨(인근 종가 종친회 총무)
정선숙 : "신XX(대전청 직원)가 국도유지 사무실에 와 가지고(와서), 오라 그래서, 가서 각서 써줬잖아."
이아무 : "써줬지."
이아무 : "오라고 그러긴 저들이 뭐 그래. (전화가 왔길래) 내 간다고 했지. 오라 그러긴 저놈들이. 내가 오란다고 가나?"
정 : "그래 각서 쓰라고 해서 그냥 써서 도장 찍어줬어?"
이 : "그건 생각 안 나고, … 아이(에이), 좀 써달라고 그러길래, '아 나 각서 쓸 줄도 모른다고'(하니까) 자기들이 부를 테니까 쓰라고 그러더라고, 그러길래 썼지 뭐. 백지에."
정씨는 이 부분을 다른 시기에 재차 확인했다.
▲이아무씨(인근 종가 종친회 총무)
이아무 : "대전서 왔고, 뭐 과장인지 무슨 뭐."
정선숙 : "허XX 과장이라고 그래?"
이 : "무슨 과장인지 글쎄. 거기 가서, … 무슨 과장인지 왔더라고. … 나보고 꼭 좀 써달라고 그래. 어떻게 쓰는 줄도 모르고 나하고 연관된 것도 아닌데, 내가 왜 쓰느냐니까, 나는 쓸 줄도 모른다고 그러니까 자기가 뭐 어떻게 어떻게 한다고 해줘서, 내가 보고 썼을거야."
정 : "뭐라고 썼어? 내용이 뭐야?"
이 : "뭐 거기 그 탄지리 건. 사토장. 그 관계로 사토하는 과정에서 돈을 주지 않고 무상으로 사토했다 그랬나. 뭐라고 분토를 했다 그랬던가."
대전에서 온 신XX라는 공무원의 전화를 받고 충주국도 사무실로 가서 그가 요구하는 대로 각서를 써줬다는 내용이다. 대전청과 국도유지 공무원들이 이렇게까지 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이와 관련, 대전청 소속 공무원 신씨는 "감독 차원에서 아무씨 종중 총무를 만나 물었더니 '그런 일이 없다'고 해서 각서는 아니지만 문서 형태로 확인 받은 적은 있다"고 말했다.
공사와 관계없는 사유지에 침범한 이유는
이와 관련, 정씨는 관계 국가기관과 건설회사가 판매할 토사를 채취하기 위해 사고와 관계없는 지점까지 침범했다고 주장해 왔다. 사고지점으로부터 좌우로 100여m 떨어졌고 잠재적 위험성도 없는 것으로 판단되는 지점까지 마구 파헤쳐졌기 때문이다.
사고지점인 탄지리 산 70-4번지는 건너편에 30m 정도의 36번 국도를 경계로 자그마한 야산과 마주보고 있다. 이 야산은 정씨 소유 부지(70-3번지)와 아무씨 종중의 소유로 나눠어져 있다. 놀라운 것은 이 야산 마저 마구잡이 굴착의 대상이 되었다는 점이다.
정씨는 관계기관들이 공사지점을 벗어나 사유지를 침범했다고 사고 직후인 1997년 말부터 주장해 왔으나 관계기관과 건설회사는 이를 일관되게 부인해 왔다. 그러나 지난 4월 제천지적공사가 분할측량을 실시한 결과 실제로 1백70평이 공사지점으로 과편입된 것으로 결론이 났다. 관계기관 측의 주장이 또 거짓으로 밝혀진 것이다.
그러나 정씨는 침범된 사유지 면적이 실제로는 1백70평이 아니라 1천5백 평이 넘는다며 조사결과에 불신감을 표명하고 있다.
기자는 지난 12월 12일 이 같은 내용과 관련, 대전청과 충주국도 등에 팩스로 질의서를 보냈다. 이어서 여러 공무원들이 전화로 질문을 해왔는데 대부분 "그 문제라면 더 이상 할 말이 없으며 이미 여러 차례 검찰, 경찰 및 감사원 등으로부터 조사를 받은 내용"이라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초로의 여성이 홀로 뛰어다녀도 증명할 수 있었던 토사 불법매매 사실을 검찰, 경찰 등 서슬 푸른 수사기관과 감사원이 실마리도 잡지 못했다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그것도 기자에게 전화를 걸어온 공무원들의 말 대로라면 '여러 차례, 더 이상 할 말이 없'을 정도로 조사했다면서 말이다.
박스 정선숙 인터뷰
"녹취? 진실이 안 통했기 때문이다"
-어쩌다 녹취를 하게 됐나?
"사고 이후 당했던 부당한 일들을 수사기관에 아무리 호소해 봤자 허사였다. 수사기관은 사건을 이리저리 돌리다가 무혐의 판정을 내리곤 했다. 너무 억울했다. 그럴 때 변호사가 녹취를 꼭 하라고 권유해서 녹음기를 들고 뛰어다니게 됐다."
-이 사건 이외에 고소나 녹취를 해본 일이 있는가.
"한 번도 없다. 성직자와 교육자 생활을 하면서 법률적 문제와는 무관한 인생을 살아왔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사건은 내 인생관에 엄청난 충격을 줬다."
-관계기관과 검찰은 당신이 보상비 때문에 이런 일을 한다고 주장한다.
"지난 1999년 1월 서울에서 관계 공무원들과 시공사 직원을 만났을 때 '국가에서 꼭 필요해, 수용하는 것이라면 공공사업을 위해 보상비를 받지 않아도 좋다 고까지 이야기했다. 당시 충주국도 직원이 내 발언을 녹음했으니 지금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이런 일이 왜 벌어지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뒤에 지역 출신 정치인이 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를 들었고 관련 내용을 녹취하기까지 했다. 이 부분에 대해서도 꼭 밝혀낼 생각이다." (월간 말지 2002년 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