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지지자가 노무현을 좋아하는 이유
- 작성일
- 2002.01.14 12:52
- 등록자
- 울OO
- 조회수
- 1702
글:amharez
김대중 지지자가 노무현을 좋아하는 이유
"지역, 충성심에 갇힌 인사", "대통령 인사 시스템 문제 심각"
오늘자 한겨레 신문과 동아일보의 머릿기사의 제목이다.
김대중 정부의 위기를 보면서
내가 DJ를 선택했던 이유들을 하나씩 되새겨 보게 된다.
92년 대선 당시, 나는 김대중 선거운동원으로 뛰고 있었다.
매서운 겨울바람, 부르트는 입술, 몰려오는 피곤.
새벽 6시에 일어나 밤 늦게까지 벌어지는 강행군은
아직 '먹고 대학생'의 신분을 벗어나지 못했던 나로서는
너무나도 힘든 일이었다.
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것이다.
선거운동이 얼마나 체력소모가 많은 일이며,
속칭 노가다 판의 일당 이상의 돈을 벌어도
들인 노동에 비해 그렇게 남는 장사가 아니란 것을...
(물론 나는 10원짜리 한 장 받은 것이 없다.)
선거가 한 이틀정도 남은 어느 날,
서울역 앞에서 홍보 전단을 돌리고 있었다.
계속되는 선거운동으로 심신은 조금씩 지쳐가고,
한편으로 드는 의구심! 정말 당선의 희망은 있는 것일까?
멀리서 기차시간이 다 된듯 종종 걸음으로 걸어가는 아주머니를 보았다.
"이번에는 바꿉시다"라는 의례적인 선거 구호를 말하며 유인물을 건네자,
그 아주머니는 내 손을 꼭 잡으며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이번에는 되겠지라!"
세월의 풍상을 느끼게 하는 주름살에 까무잡잡한 피부,
그야말로 촌스런 몸빼바지를 입고 지저분한 보자기에 싸여 있는 짐을 들고
선거를 하기 위해 고향으로 내려간다는 그 아주머니에게
김대중이란 인물은 어떠한 의미로 다가가는 것일까?
나는 해줄 수만 있다면 김대중이란 대통령을
그 아주머니에게 선물하고 싶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확실히 될겁니다."라고 말해주는 내 목소리 어디에도
자신감은 찾아보기가 힘이 들었다.
92년 대선의 막바지는 그렇게 나를 지나갔고,
대선패배의 우울증을 벗어나는데 많은 시간을 허비해야만 했다.
그리고, 대선이 끝나고 한겨레 신문에 실린, 겨울 입김을 내 뿜으며
거리를 걸어가는 사람들의 가슴을 뻥 뚫어 놓은 박재동 화백의 만평 그림은
가슴 시린 기억으로 마음 한 켠에 남아있다.
(기억을 하고 있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네요.)
그렇게 바라던 김대중의 당선은 IMF사태와 함께
슬며시(?) 나에게 다가왔다.
97년 군 훈련소에서 전해 들은 김대중의 당선 소식은
어쩌면 나에게 허망함 그 자체였는지도 모른다.
92년과 97년의 김대중 대선 전략의 가장 큰 차이점은
민주세력과의 연합이냐 JP와의 연합이냐였다.
92년에 김대중 후보가 있는 민주당은 민주주의민족통일 전국연합과
정책연합을 실시하고 일부 정책을 공유해 나가는 협정을 맺었다.
당시 민주세력의 큰 줄기였던 전대협은
정권교체 후에 잠실종합운동장에서 전대협 출범식을 하자던
정말 꿈도 야무진 청사진을 계획하기도 하였다.
전국연합은 김대중의 당선을 위해 힘을 결집하였던 것이다.
그렇지만 지역주의의 벽은 너무나 큰 것이었다.
비호남연합구도였던 3당합당의 강고한 지역 구도를
김대중이 민주세력을 끌어안고서 깨뜨리기에는
호남의 인구가 너무 작았으며, 민주세력의 대중 영향력은
너무 미약하기만 했던 것이다.
더구나 민주화 동지라던 김영삼이 들고 나온 색깔시비는
변절자 김영삼을 확인하는 훌륭한 증거가 되기도 했지만,
민주화 운동 세력의 퇴보된 위상을 상징하기도 했다.
97년 김대중은 DJP연합을 들고 나왔다.
그는 지역기반이 없는 민주세력 대신에
충청 지역의 맹주 JP를 우군으로 끌어들인 것이다.
이 전략은 결과론적으로 대성공을 거두었다.
극우보수라 할 수 있는 JP의 지지는 영남의 규모에 버금가는
호남과 충청권의 연합을 일구어냄과 동시에
색깔론의 시비를 일거에 잠재울 수 있는 최상의 카드였으며
민주세력들에게는 대안부재에 의해 김대중 선택을 강요한,
DJ로서는 더할 나위없는 꽃놀이패였던 것이다.
이것은 한국 정치발전을 이룩했다는 정권교체가 가지고 있는
한국정치의 우울한 자화상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어쩌면 오늘의 위기는 단독으로 정권을 쟁취할 힘이 부족했던
DJ정권 아니 개혁정권이 지닐 수 밖에 없는 업보인지도 모른다.
JP까지 끌어들였음에도 불과 40만표 차이 밖에 나지 않은 것은
소수정권의 수장으로서 김대중이 걸어갈 가시밭길을 보여주는 것이며,
DJ정권의 앞날이 결코 순탄치 않을 것임을 예고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만큼 보수세력이 가지고 있는 헤게모니가 강고하다는 뜻이고,
한국사회의 성숙도가 그것 밖에 되지 않는다는
가슴아픈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대선으로부터 3년이 조금 더 지난 지금
DJ의 상황은 당시와 달리 사면초가 상태로 볼 수 있다.
김대중 정부의 불운은 한반도를 둘러싼 주변 열강들의 변화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고어를 근소하게 이기고 들어선 미국의 부시 정권은
이른바 '힘의 외교'를 구사하면서 러시아 및 중국과의 대립을 불사하고 있으며,
북한과는 제네바 협정 파기 발언까지 서슴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전 세계가 대놓고 반대하는 미국의 MD정책에 대해
한국이 반대도 찬성도 아닌 어쩡쩡한 입장에 서 있는 것은
DJ의 외교정책이 갖고 있는 딜레마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거기에 교과서 왜곡과 신사참배로 대표되는 일본의 급격한 우경화에
보수적 색채로 가득찬 고이즈미 총리의 등장은
DJ의 외교적 운신의 폭을 더욱 좁게만 하고 있다.
이같은 미국과 일본의 우경화는
유사 이래 처음으로 미국과 일본과의 외교적 불편관계를 가져 올 가능성이
농후하며, 햇볕정책의 성공을 가로막는 엄청난 난관으로 작용할 것이다,
일본 고이즈미 정권의 출범을 환영하는 부시정권을 보노라면
DJ정권의 외교사적 비운을 안타까와할 수밖에 없다.
이같은 사실은 미국 대선 전부터 노골적으로 부시를 지지하는 논조를 견지한
조선일보의 보도행태만 보아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그렇다고 국내 상황마저 호락호락한 것은 아니다.
DJ가 벌여 놓은 개혁정책 중에 어느 것 하나도 열매를 맺은 것이 없으며,
하락할 대로 하락한 경제는 회생기미도 아직 보이지 않고 있다.
천문학적으로 투입한 공적자금은 제대로 회수가 되지 않고 있으며,
적자로 인해 점점 자본을 잠식해가고 있는 대우자동차는 해결의 실마리도 없다.
야심찬 의약분업 실시는 건강보험 재정의 붕괴로
그 근본적인 뿌리조차 의심을 받고 있는 실정이다.
심지어 최대의 치적인 남북대화는 교착상태에 빠지고
김정일의 답방마저 불투명해지고 있다.
지금 조선일보와 한나라당으로 대표되는 수구세력은
차기 대선에서 다시 돌아올 정권을 노래하며
김대중 정부의 역사적 실패를 목놓아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그들의 기대감은
점차로 전통 민주화세력에게까지 우려감으로 확산되고 있다.
그렇지만 나는 섣부른 실패의 예단을 경계하고자 한다.
아니, 설혹 실패가 확실하다 하더라도
그 실패를 쥐고 흔들어서는 절대 안된다고 생각한다.
DJ개혁의 실패는 비단 DJ혼자만의 비극으로 끝날 성질이 아니기 때문이다.
분단 50년 만에 찾아온 남북화해의 분위기는 누가 뭐라해도 DJ가 일등공신이다.
이를 무위로 돌리고 역사의 후퇴를 가져와야 할 것인가?
의약분업은 과정 상에 문제는 있을 지언정
이 땅의 왜곡된 의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넘어야 하는 홍역과 같은 것이었다.
DJ가 김영삼의 전철을 밟는다면
이로 인한 역사적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이 져야 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조선일보가 빌고 있는 김대중의 실패가 현실화 되었을 때 나타날
역사의 퇴보는 과연 DJ 혼자서만이 질 수 있는 무게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현실적으로 말해, DJ의 실패는 진보로 대표할 수 있는 민주노동당의 집권을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수구보수로 대변되는 한나라당의 재집권을 가져 올 것이다.
DJ가 그나마 할려고 시늉이라도 하는 국가보안법 개정은
한나라당의 집권과 함께 물 건너갈 것이며,
북한과의 화해의 물결은 퇴행이란 절차를 남겨 놓게 될 것이다.
이 모든 것을 우리 모두는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대통령 선거가 다가올수록 수구세력의 칼날은 점점 예리해 질 것이다.
그리고 그 칼날은 떠나갈 DJ를 향한 것이 결코 아닐 것이다.
명시적으론 차기를 노리는 민주당 대선주자가 타겟이 될 것이며,
근원적으로는 개혁세력 전반이 그 목표점이 될 것이다.
지금 언론개혁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헤게모니 쟁탈전에서
그 양상은 점점 더 명확해지고 있다.
김중배 사장이 있는 MBC를 향한 한나라당의 유례없는 공세와
언론개혁을 둘러싼 조중동의 연합전선은 이미 시작된 싸움을 잘 보여주고 있다.
어느 누가 대선후보가 되어도
DJ의 실패를 딛고 민주당 간판으로 한나라당을 이길 수는 없을 것이다.
97년 대선과 마찬가지로
김대중은 나에게 불가피한 선택이 될 것이고
지금의 지지도 임기 끝까지 아니 임기가 끝나서도 결코 바뀌지 않을 것이다.
지금은 보수우익의 총반격이 시작된 시기이다.
어떻게 해서든 정권을 되찾아 오기 위한 몸부림이 시작된 것이다.
그들은 지금 싸움을 걸어오고 있으며,
이제 그 싸움은 피할래야 피할 수 없는 지경에 있다.
만약 이 싸움에서 패배하여 한나라당으로 대표되는 수구세력에게 정권을 넘겨준다면
그 이후에 오는 역사의 반동은 아마 몇 십년간 치유하기 어려운 결과를 나을 것이다.
이제 김대중에 관한 이야기를 노무현에 대한 이야기로 마치고자 한다.
나는 노무현을 무척 좋아한다.
노무현을 좋아하는 것은 그가 가진 대중적 인기 때문이 아니다.
대중적 인기라면 그 옛날(?)의 박찬종을 능가할 사람이 없을 것이다.
노무현은 대중적 인기를 위해 자신의 논리를 왜곡하지 않는 사람이며,
권력을 쟁취하기 위해 옳음을 팔지 않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그를 좋아하는 이유는 노무현이 정치적 이상과 정치 현실 사이에서
놀라우리만치 균형점을 찾아낼 줄 아는 정치인이기 때문이다.
그가 무모하리만치 지역감정의 벽에 도전하며
김대중 당의 깃발을 들고 부산에 연거푸 출마한 것이 그가 가진 정치적 이상의 표현이라면,
그가 92년과 97년에 도덕적으로 많이 부족한(?) 김대중을 지지한 것은
정치 현실을 냉엄히 판단할 줄 알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균형감각은 우연히 나온 것이 아니다.
다름아닌 정치인으로서 가지고 있는 남다른 역사의식 때문일 것이다.
노무현은 역사를 볼 줄 아는 정치인인 것이다.
노무현이 김대중 정부의 정책 중에서 가장 높게 평가하는 것이
다름아닌 복지정책과 대북정책에 관한 것이다.
대북 햇볕정책에 대한 찬사는 그렇다 치더라도
국민연금을 비롯해 실패에 실패를 거듭하는 김대중의 인기없는 복지정책을
노무현은 대놓고 역사적으로 올바른 방향이라고 여러번 칭찬을 해댔다.
민주당의 정치인들이 조중동의 칼보다 무서운 펜을 두려워하여
아무 소리 못하고 있을 때, 유일하게 언론개혁의 역사적 당위성을 말한 사람이
바로 노무현이다.
노무현은 김대중의 부족한 여백을 채우면서
그가 이룩해 놓은 대북정책과 복지정책의 장점을 계승해 나갈 수 있는
유일한 정치인이며, 불완전하기만 한 김대중의 개혁을 완성할 수 있는
유일한 적임자라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노무현이 가진 장점은 아직도 진한 부산사투리가 남아있는
경상도 사나이라는 것이다.
불행하지만 수적으로 소수에 위치한 전라도 사람이 개혁을 이끌기에는
지금 소수정권으로서의 김대중의 한계가 너무 명확하기 때문이며,
논리적으로 극복하기에는 지역감정의 벽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인정하기 싫은 현실이지만, 차라리 전라도가 지지할 수 있는 경상도 사람이
개혁을 이끌어가는 것이 한국사회의 미래를 위해 좋을 것이라고 본다.
노무현의 등장은 경상도에서 개혁의 불길을 되살릴 수 있는 유일한 카드이다.
나는 노무현에게서 업그레이드된 김대중을 바라보게 된다.
노무현이 김대중에게 보내는 찬사가 있다면,
그것은 권력에 대한 아부가 절대로 아니다.
그것은 다름아닌 노무현이 바라보는 정치적 이상의 실현을 위한
현실적 선택의 향방이 될 것이다.
예상컨데, 노무현은 김대중의 실패를 밟고서 대선에 나가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노무현은 역사적 원칙을 고수할 줄 아는 정치인이기 때문이다.
나는 노무현에게서 김대중이 못해낸 합리적이고도 힘있는 개혁을 기대하고자 한다.
(글:amharez)